천문습독관(天文習讀官)
주요 정보 | |
---|---|
대표표제 | 천문습독관 |
한글표제 | 천문습독관 |
한자표제 | 天文習讀官 |
상위어 | 관상감(觀象監) |
관련어 | 이습관(肄習官) |
분야 | 정치/행정/관직·관품 |
유형 | 직역 |
집필자 | 김일권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천문습독관(天文習讀官) |
관상감(觀象監)에서 천문학의 전문 지식을 강습하고 양성하기 위해 설치한 관직 혹은 그 관원.
개설
습독관(習讀官)은 조선시대에 전문 기술직 분야의 지식을 강습하고 육성하기 위해 천문, 의학, 역어(譯語) 등 주로 전문 직종의 중인 기술관으로서 선발하였다. 이 중 실력이 우수한 자는 이습관(肄習官)이라 하여 학업을 계속 연마하도록 하였다. 습독관은 처음에는 중인 기술관의 자제들로 임명하였으나, 후대에는 문신·생원·진사 등의 문관들에게도 전문 지식을 습득하도록 하였다.
담당 직무
관상감에서 천문학의 전문 지식을 강습하고 학업을 연마하는 직무를 맡았다.
변천
습독관은 조선시대에 전문 분야의 지식을 강습하고 육성하기 위해 천문, 의학, 역어 등 주로 전문 직종의 중인 기술관으로서 선발하였다. 승문원(承文院)·사역원(司譯院)·관상감·전의감(典醫監)·훈련원(訓鍊院) 등에 설치하였는데, 대개 다른 관서의 하급 관원들로 겸임시켰기 때문에 겸습독관이라고도 하였다. 이들 중에 실력이 우수한 자는 따로 뽑아 이습관이라 하여 학업을 계속 전공하게 하였다. 습독관은 처음에는 중인 기술관의 자제들로 임명하였으나, 후대로 가면서 문신·생원·진사 등의 문관들에게도 개방하여 전문 지식을 습득하도록 하였다.
습독관 제도는 조선초기부터 활성화되었는데, 1422년(세종 4)에는 훈련원에 무경(武經)에 능통한 무경습독관을 정원 20명으로 선발하였고, 1456년(세조 2)에는 전의감에 의서습독관(醫書習讀官) 15인을 두어 의서를 연구하도록 하였다. 『경국대전』에는 관상감에 천문습독관(天文習讀官) 10인, 승문원에 이문습독관 20인, 사역원에 한학습독관 30인, 전의감에 의학습독관 30인, 훈련원에 무경습독관 30인으로 모두 120명을 두었다.
『경국대전』「이전(吏典)」에서 정3품 아문인 관상감 직제에 대해, 천문학습독관은 10명으로서 종6품 벼슬에서 물러난 후 고을 원 취재 시험에 합격한 사람은 고을 원으로 등용하고, 본업에 정통한 사람은 이습관이라 부르면서 공부를 계속 시키며, 전직 관리일 때에는 녹봉 없는 관리의 규례에 따라 등용한다고 규정하였다. 삼학(三學)에서 천문과 책력 등에 모두 정통한 사람은 특별히 ‘정직(正職)의 벼슬자리[顯官]’에 임명하여 그대로 근무하도록 하였다.
『서운관지』「관직편」에서 이전에는 종6품의 천문학습독관 10명이 있었고, 『대전통편(大典通編)』에서 “천문습독관이 거관(去官)한 후에 수령 취재에 입격(入格)하면 서용(敍用)한다. 본업에 정통한 자는 이습관이라 칭하고 본업을 익히게 한다. 전함(前銜)은 무록관(無祿官)의 예에 따라 서용한다.”고 했는데, 지금은 모두 없애고 체아 두 자리만 있다고 하였다.
『증보문헌비고』「선거고」에는 관상감의 습독관 중 근무한 지 오래되고 산학(算學)에 정통한 사람은 동반(東班)에 서용하고 본사(本司)에 겸차(兼差)하며 외직에 서용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습독관의 생활을 살펴보기 위해, 『경국대전』「예전」 ‘장려(獎勵)’조를 보면, 의서습독관에 대해서, 공부한 책들을 날마다 수행하는 과제[日課]로서 기록했다가 본조에서 제조(提調)와 함께 강론 시험을 보게 하며, 공부한 책들에 능통한 자는 보고하여 정식 벼슬[顯職]에 임명하되 본직을 겸하게 하고, 태만한 사람은 경중에 따라 죄를 다스린다고 하였다. 또 습독관과 교수들 가운데에서 생원·진사는 출근한 날수를 성균관에서 날마다 치는 동그라미의 수로 계산하여, 문과의 성균관 시험에 응시하는 것을 허락한다. 인재로 육성된 사람이 맡은 직무가 없는 관리[屬散者]가 된 경우에는 늘 본청사에 출근하게 하고 업적 평정을 상세히 하여 동반과 서반(西班)에 결원이 생기는 즉시 그때그때 채용한다고 하였다.
『서운관지』 권3에서 1546년(명종 1)에 간의대(簡儀臺)의 규표(圭表)가 부러져 관상감에 명하여 보수하게 하였는데, 본감에서 “사인(士人) 하세준(河世濬)은 공교한 생각을 가지고 있으니, 무릇 두 궁궐에 있는 보루각(報漏閣)과 일영(日影) 등의 기구와 하늘을 관측하는 기구들은 모두 하세준이 수리한 것입니다. 지금 본감에는 하세준에게 붙여줄 자리가 없으니, 우선 임시로 습독관으로 임명하여 관대(冠帶)를 갖추고 일을 보게 하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하니, 그대로 하도록 명하였다고 한다. 이는 실무에 전문성이 큰 하세준을 임시직 습독관으로 임명하여 임무를 수행하게 한 사례이다.
참고문헌
- 『대전회통(大典會通)』
- 『국조역상고(國朝曆象考)』
- 『서운관지(書雲觀志)』
-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 김일권, 『동양천문사상 하늘의 역사』, 예문서원, 2007.
- 김일권, 『국역고려사 권14 지2 曆志 역주』, 동아대 석당학술원, 경인문화사, 2011.
- 陳遵嬀, 『中國天文學史』 上·中·下 , 上海人民出版社,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