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개(天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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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高麗)의 인종(仁宗) 대에 묘청(妙淸)이 대위(大爲)를 세우고 사용한 연호(1135년).

개설

고려의 인종 대에 묘청이 대위를 세우고 사용한 연호이다(1135년).

인종 대는 금(金)나라의 개국과 <이자겸(李資謙)의 난(亂)> 등으로 국내 · 외적으로 매우 어수선한 시기였다. 이에 승려 묘청이 수도 천도(遷都)를 건의하면서 개경(開京)에서 서경(西京)으로의 수도 천도 계획이 세워졌으나, 귀족 세력들과 묘청 세력들 간의 다툼으로 이 계획은 취소되었다. 그러자 묘청은 1135년 황해도 자비령 이북의 길을 막고 서북 여러 고을의 군대를 서경으로 집결시키는 <묘청의 난>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곳에서 ‘대위국(大爲國)’을 개국하고, ‘천개(天開)’를 연호로 선포하였다. 그러나 대위국은 평서원수(平西元帥)김부식(金富軾)을 중심으로 한 토벌군에 의하여 곧 진압되면서 천개 연호도 더 이상 사용되지 않았다.

이와 관련하여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의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서는 평양부 항목에서 <묘청의 난>을 설명하고 있으며, 이때 천개 연호가 등장한다.

참고문헌

  •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 『고려사(高麗史)』
  • 이현종 편, 『동양연표(東洋年表)』, 탐구당, 19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