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록(倡義錄)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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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창의록 |
한글표제 | 창의록 |
한자표제 | 倡義錄 |
분야 | 사적기(史蹟記) |
유형 | 한문 |
지역 | 한국 |
시대 | 조선 |
왕대 | 영조 |
집필자 | 성낙수 |
저편자 | 곽원갑 |
간행처 | |
간행년일 | 1771 |
권책수 | 2권 1책(49장) |
사용활자 | 목판본 |
표제 | 창의록(倡義錄) |
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창의록(倡義錄) |
이 책은 조선 후기 곽재우(郭再祐)의 후손 곽원갑(郭元甲)이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의병으로 활약한 곽재우와 의병들의 창의사적을 기록한 사적기다.
개설
이 책은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곽재우와 의병들의 창의사적을 기록한 사적기다. 곽재우의 후손인 곽원갑이 쓰고, 박윤광(朴胤光)이 교열하였는데, 편찬·간행 연대는 알려져 있지 않다. 서문은 1732년(영조 8) 조현명(趙顯命)이, 1734년(영조 10) 김시형(金始炯)이 각각 썼으며, ‘화왕수성도(火旺守城圖)’가 실려 있다.
편찬/발간 경위
이 책은 원래 『망우당선생문집(忘憂堂先生文集)』에 부록으로 들어 있는 것이다. 이 책의 책판(冊板)은 임진왜란 때 최초로 의병을 일으켜 전공을 세운 곽재우의 시문(詩文)과 연보(年譜) 및 부록(附錄) 등을 판각한 것이다. 이 책판은 3차에 걸쳐 내용을 고치고 첨가하여 간행되었는데, 이것은 3차에 해당되는 것으로 1771년(영조 47)에 간행된 것이다.
『창의록(倡義錄)』 책판(冊版)은 임진왜란 당시 곽재우가 의령(宜寧)에서 의병을 일으킬 때 함께 참여한 사람들의 명단인 ‘용미음미록’과 정유재란(丁酉再亂) 때 곽재우와 함께 창녕의 화왕산입성(火旺山入城)을 방어했던 경상도 의사들의 명단인 ‘화왕산성동고록(火旺山城同苦錄)’ 및 ‘화왕수성각(火旺守城閣)’ 등을 판각한 책판이다.
『창의록』은 곽원갑 등이 편집하고 저술하여, 1732년에 경상 감사(監司)인 조현명(趙顯命)에게 서문을 받고, 1734년에 경상 감사(監司)김시형(金始炯)에게 서문을 받았다. 이것은 임진왜란사 연구에 있어서, 특히 경상도 지역의 활약을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이다.
서지 사항
2권 1책(49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목판본이다. 4주쌍변이고, 반곽은 20.4×15.7cm이다. 10행 자수부동(字數不同), 쌍행, 내향2엽화문어미를 갖추고 있고, 크기는 29.5×19.3cm이며,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이 책은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면, ‘용사응모록(龍蛇應募錄)’이 실려 있는데, 이 장에는 의병장 곽재우, 영장(領將)윤탁(尹鐸), 도총(都摠)박사제(朴思齊)를 비롯한 군무 17인, 의병 289인의 성명·호·생년·거주지 및 창의한 지역 등을 기록하고 있다.
2권에는 ‘화왕입성동고록(火旺入城同苦錄)’이 실려 있는데, 1597년(선조 30) 7월 21일 입성하여, 성을 지킨 방어사곽재우, 종사관 성안의(成安義), 조방장(助防將) 이영(李英) 등 559인의 성명· 관직명 등이 실려 있다.
1592년(선조 25) 4월 14일 임진왜란이 일어나 왕이 의주(義州)로 피난하자, 같은 달 22일 제일 먼저 의령에서 수십 명의 사람들을 모아 의병을 일으켰다는 내용과 1597~1598년 정유재란 때 경상좌도 방어사(防禦使)로 임명되어, 다시 벼슬길에 나아가, 화왕산성(火旺山城)을 수비하면서, 왜장 가토(加藤淸正)군을 맞아 싸웠다는 사실도 들어 있다.
의의와 평가
이 책은 임진왜란 때 의병들의 활동과 일반 농민들의 저항을 살펴보는 데 좋은 자료가 된다.
참고문헌
- 김문자, 「전쟁과 평화의 근세 한일 관계-임진왜란 통신사」, 『일본역사연구』 제18집, 일본사학회, 2003.
- 노영구, 「공신선정과 전쟁평가를 통한 임진왜란 기억의 형성」, 『역사와 현실』 통권 51호, 한국역사연구회, 2004.
- 이수건, 「조선시대 신분사 관련 자료조작-家系·人物관련 僞造자료와 僞書를 중심으로-」, 『대구사학』 제86집, 대구사학회,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