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희당(緝熙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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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궁에서 세자의 생활공간으로 사용했던 전각.

개설

경희궁에서 세자가 생활하는 공간은 원래 승휘전(承暉殿)이었다. 승휘전은 효종대에 철거하여 창덕궁 만수전(萬壽殿)을 짓는 데 사용하였고 숙종대 중건하였으나 얼마 지나지 않은 1689년(숙종 24) 화재로 불 타 없어졌다(『숙종실록』 24년 11월 22일). 이후 중건되지 않아서 집희당 등이 세자의 생활공간이 되었다. 집희당은 원래 채선당(綵線堂)이었으며 숙종대에 이름을 바꿨다.

위치 및 용도

세자의 공간은 왕궁의 동쪽에 위치하여 동궁이라고도 한다. 경희궁 역시 궁궐의 동쪽 영역에 세자를 위한 공간이 구성되어 있으나 공적인 활동을 하는 곳과 생활하는 곳은 떨어져 있다. 세자가 하례를 받는 공간인 경현당(景賢堂)은 경희궁 남동쪽에 위치하는 반면, 집희당은 북동쪽 영역에 있다.

변천 및 현황

1691년(숙종 17) 『승정원일기』에 집희당의 이전 이름인 채선당이 등장하는데, 이어할 때 세자궁의 출입구를 지정하는 내용에서 언급되어 있다. 이때는 승휘전이 만수전 공사를 위해 철거된 후이고 경덕궁을 중건하기 전의 일이다. 즉 승휘전이 없는 상태에서 경희궁에서 세자의 생활공간으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1693년 경덕궁을 수리할 때 전·후면의 단청을 보수하였고, 이듬해인 1694년(숙종 20)에 이름을 집희당으로 바꾸었다.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훼철되어 현존하지 않는다.

형태

집희당은 추모당(追慕堂)과 함께 경희궁의 북동쪽 영역에서 동향을 하고 있다. 전각의 좌우로 행각이 붙어 있고 앞뒤로도 긴 행각이 붙어서 건물군을 이룬다는 점이 특이하다. 맞배지붕을 한 소박한 건물 모습을 하고 있다.

관련사건 및 일화

숙종이 지은 「집희당」이라는 시가 전해진다.

참고문헌

  • 『경덕궁수리소의궤(慶德宮修理所儀軌)』
  • 『궁궐지(宮闕志)』
  • 이효석, 「조선시대 세자의 궁궐 공간 사용에 관한 연구」, 서울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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