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잠현(鎭岑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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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광역시 유성구에 설치된 조선시대 지방 관청이자 행정구역 명칭.

개설

진잠현(鎭岑縣)은 고려 940년(고려 태조 23)에 설립되었다. 조선이 건국한 뒤 1413년(태종 13)에 현감을 두었다. 15세기에 호수가 153호, 인구가 583명이었다. 군정은 시위군(侍衛軍) 1명, 수성군(守城軍) 2명, 선군(船軍) 92명이었다. 1895년(고종 32)에 진잠군으로 고쳤으며, 1914년에 대전군에 흡수되었다.

설립 경위 및 목적

진잠현은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진현현(眞峴縣)이었다. 진(眞)을 정(貞)으로 쓴 기록도 있다. 통일신라시대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진령(鎭嶺)이라 고치고 지금의 충청남도 논산 지역인 황산군(黃山郡)의 속현으로 삼았다. 고려 940년에 지금의 이름으로 고쳤다. 1018년(고려 현종 9)에 공주에 예속시켰다가 뒤에 감무(監務)를 두었다. 조선이 건국한 뒤 1413년에 충청도 공주목에 속하게 하고 현감으로 고쳤다.

조직 및 역할

진잠현이 설립된 이후로 현감을 두었는데, 6품의 음관(蔭官)이 임명되었다. 18세기 통계를 보면 관아에는 좌수 1명, 별감 1명, 군관 12명, 아전 10명, 지인 5명, 관노 7명, 관비 5명, 사령 7명이 속해 있었다.

변천

조선후기에도 행정단위는 변함이 없었다. 그러나 읍세는 계속 쇠락하였다. 1759년(영조 35)의 기묘장적(己卯帳籍)에 의하면 진잠현은 5개 면으로 구성되었으며, 가호가 99호, 인구는 남자 180명, 여자 200명이었다. 토지는 280결 32부 5속에 불과하였다. 1895년에 지방제도 개정으로 전국을 23부(府)의 행정 구역으로 나누었는데, 이때 공주부 관할의 진잠군으로 승격하였다(『고종실록』 32년 5월 26일). 1896년(고종 33)에 충청남도 진잠군이 되었는데, 이때 읍세가 확장되었다. 『진잠군양안(鎭岑郡量案)』을 보면 가호가 2,253호, 결총은 1,120결 1부였다. 1914년의 군현 통폐합으로 대전시 유성구에 통폐합되었다.

참고문헌

  • 『대동지지(大東地志)』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여지도서(輿地圖書)』
  • 『진잠군양안(鎭岑郡量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