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시(陳試)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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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진시 |
한글표제 | 진시 |
한자표제 | 陳試 |
상위어 | 과거(科擧) |
관련어 | 복시(覆試), 허진(虛陳), 회시(會試), 부자상피(父子相避), 진시장(陳試狀) |
분야 | 정치/인사/선발 |
유형 | 개념용어 |
지역 | 대한민국 |
시대 | 조선 |
왕대 | 조선 |
집필자 | 김경용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진시(陳試)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숙종실록』 15년 2월 10일, 『광해군일기』 4년 4월 19일, 『광해군일기』 10년 8월 12일, 『인조실록』 26년 7월 8일, 『현종실록』 7년 9월 26일, 『인조실록』 1년 윤10월 24일, 『숙종실록』 43년 9월 10일, 『숙종실록』 43년 10월 7일 |
대소과 초시에 입격한 자가 부득이한 사정으로 회시를 치를 수 없을 때 다음번 과거 회시에 나아갈 수 있도록 해 주는 것.
개설
진시는 대소과 초시에 입격하여 회시에 응시해야 할 사람이 부득이한 사정 때문에 과거에 나아갈 수 없을 때, 다음 과거의 회시에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의미하였다(『숙종실록』 15년 2월 10일). 진시 대상자 중 한성의 거주자는 한성부, 지방에서는 본 읍을 거쳐 예조에 알리고, 그 타당성이 인정되면 다음 과거가 설행될 때 회시에 나아갈 수 있도록 하였다.
내용 및 특징
진시를 허락받을 수 있는 경우는 본인이 상중(喪中)이거나 중병을 앓고 있을 때, 기복친(朞服親)이 장례를 치르기 이전일 때, 부자상피(父子相避)에 해당될 때, 시관과 상피할 때 등이었다(『광해군일기』 4년 4월 19일)(『광해군일기』 10년 8월 12일)(『인조실록』 26년 7월 8일)(『현종실록』 7년 9월 26일).
시관과 응시자가 상피해야 할 경우나 아비와 자식이 함께 초시에 응시하는 경우는 시험 장소를 달리하여 과장에 나아갈 수 있지만, 회시인 경우나 알성시·춘당대시 등 왕이 친림하는 과거에는 아비와 아들이 함께 응시할 수 없고 자식이 상피하여 진시장(陳試狀)을 내야 했다. 왕의 친림 여부와 무관하게 과거를 주재하는 관리와 상피해야 할 사람도 진시해야 했다.
식년시 초시 입격자는 다음 식년시에, 증광시 초시 입격자는 다음 증광시에, 별시 초시 입격자는 다음 별시의 회시에 나아가는 것이 원칙이나(『인조실록』 1년 윤10월 24일), 소과인 경우는 식년시·증광시를 가리지 않고 다음 회시에 나아갈 수 있게 하였다(『숙종실록』 43년 9월 10일). 또한 정시 초시에 입격한 자가 진시하였을 경우는 증광시·식년시·별시의 회시에 응시할 수 없었다.
아래에 소개된 문서는 회시를 거행하기 이전에 진시할 사람과 진시하였던 사람의 명단을 제출하라는 공문으로, 경주부에서 용산서원에 내린 것이었다. 진시한 이후에 응시하는 경우와 진시하는 경우 각각에 대하여 시권 피봉례(皮封例)에 따라 성명, 연령, 거주지, 사조(四祖) 등을 갖추어 보고하도록 하였다. 또한 진시 후에 응시하는 경우에 몇 년 몇 월 무슨 과에 입격하였는데 몇 년 몇 월 무슨 일을 당하여 회시에 나아갈 수 없었으나 이제 응시할 것이라는 내용을, 진시하는 경우에는 몇 년 몇 월에 무슨 일을 당하여 진시하고자 한다는 내용을 별도로 상세히 기록하라고 하였다.
- 00016212_그림1_진시할 사람과 진시했던 사람의 명단을 제출하라는 공문
각 서원·향교에서는 이러한 지시에 따라 공문을 올리는데, 진시할 대상자가 없다고 보고한 경우도 있고, 진시장을 갖추어 올리니 처리해 달라는 문서도 접할 수 있었다.
아래에 소개된 문서는 사유를 갖추어 올린 진시단자(陳試單子)였다. 이 단자를 제출한 유제양은 1893년(고종 30) 가을 생원시 전라도 초시에 입격하였으나, 그해 겨울에 아들이 사망하는 바람에 1894년 봄에 설행되는 소과회시에 나아갈 수 없음과 차후에 회시에 나아갈 때 빙고(憑考)해 주길 예조에 청하였다. 자식의 상(喪)이라도 장자인 경우 9개월 탈상이기 때문에, 회시 설행 시기가 다가오자 이 진시단자를 올린 것이었다.
- 00016212_그림2_사유를 갖추어 올린 진시단자(陳試單子)
초시에 입격하였는데 아무런 조치 없이 회시에 응시하지 않으면 초시에 입격한 효력이 상실되며, 허위로 진시를 도모한 자는 10년 동안 과거에 나아갈 수 없었다(『숙종실록』 43년 10월 7일).
아래 1865년(고종 2) 2월에 작성된 식년문과회시 1소 강경(講經)에 사용한 명부를 보면 응시자의 성명과 거주지, 부친의 직역과 이름 아래에 “진(陳)” “허진(虛陳)” 등을 부기했는데, 이는 정당한 사유로 진시가 허락되어 강경에 불참한 인물, 진시장을 내었으나 불참 사유가 인정되지 않은 인물을 각각 나타내는 것이었다. 또한 이 명부의 말미에는 예전에 진시를 허락받았다가 1865년 식년문과회시에 응시한 인물들을 따로 적었다.
- 00016212_그림3_1865년 식년문과 회시 초장 명부
참고문헌
- 『대전회통(大典會通)』
- 『한성시원방(漢城試原榜)』
-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고문서집성 50』, 한국정신문화연구원, 2000.
- 김경용, 「조선시대 과거제도 시행의 법규와 실제」, 『교육법학연구』 제16권 2호, 대한교육법학회, 2004.
- 김경용, 『장서각수집 교육·과거관련 고문서 해제(권1)』(장서각연구총서 2), 민속원,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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