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산세고(晉山世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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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학자 강회백(姜淮伯, 1357~1402)·강석덕(姜碩德)·강희안(姜希顔) 등의 3대에 걸친 시문을 강회백의 손자 강희맹(姜希孟, 1424~1483)이 편집하여 1476년(성종 7)에 간행한 시문집이다.

개설

이 책은 1476년(성종 7) 강회백의 손자 강희맹이 편집·간행하였다. 책의 첫머리에는 신숙주(申叔舟)·최항(崔恒)·정창손(鄭昌孫)의 서문이 있으며, 권말에는 김종직(金宗直)·서거정(徐居正) 등의 5편의 발문이 실려 있다. 이들 서·발문에 의해, 이 책의 편집과 개판(改版) 및 이판(移板)에 따른 경과를 알 수 있다.

김종직의 발문에 의하면, 강희맹이 1473년(성종 4)에 세고(世稿)를 편집하여 함양군수로 있는 김종직에게 부탁하여 함양에서 개판하였으며, 이듬해에 강희맹이 쓴 ‘양화소록서(養花小錄序)’가 추각(追刻)되었다. 1476년 책판을 진주로 옮기면서, 다시 강희맹이 쓴 ‘진산세고이진목발(晉山世稿移晉牧跋)’과 서거정의 ‘진산세고발(晉山世稿跋)’이 추각된 것이다.

진주강씨 집안은 강희맹에 이르러 정치적으로 훈구파의 입지를 다지는 한편, 관각문인으로서의 재능을 꽃피운 조선 전기의 대표적 명문거족이다. 이 집안의 문학적 전통은 그의 조부인 강회백에서부터 시작되었는데도, 그동안 연구된 바가 없다. 삼대에 걸친 시문집인 『진산세고(晉山世藁)』에는 93제 108수가 실려 있다. 이 작품들은 강희맹이 강회백의 문집 『통정집(通政集)』에서 정선한 것으로, 강회백의 대표적인 시문이라 할 수 있다. 이를 대상으로 강회백의 시문학을 고찰할 수 있다.

편찬/발간 경위

이 책은 조선 전기의 문신인 강희맹을 비롯하여, 3대에 걸친 인물들의 ‘행장’, ‘서발’, ‘시문’, ‘시문집발’을 수록한 것으로, 1476년에 간행된 것으로 짐작된다.

강희맹은 1447년(세종 29) 문과에 18살의 나이로 장원급제한 뒤 종부시 주부, 예조 좌랑과 정랑, 예조와 이조의 참의, 예조와 형조의 판서 등을 거쳐 좌찬성의 벼슬에까지 올랐다. 인품이 겸손하고 치밀하여, 일을 잘 처리하였으며, 당대의 뛰어난 문장가였다. 저서로 『금양잡록(衿陽雜錄)』, 『촌담해이(村談解頤)』 등이 있다.

이 책은 강희맹의 할아버지 강회백, 아버지 강석덕과 조선시대 유명한 화가였던 형 강희안의 행장과 시문을 각각 1권으로 하고, 강희안이 지은 『양화소록(養花小錄)』 1권을 합하여, 전 4권으로 엮었다. 책의 첫머리에는 신숙주, 최항, 정창손의 서문이 실려 있고, 책 끝에는 김종직, 서거정 등의 발(跋)이 있다. 권1은 강회백의 행장과 그의 시문집이고, 권2는 강석덕의 행장과 그의 시문집이며, 권3은 강희안의 행장과 그의 시문집이다. 권4는 강희안의 『양화소록』이 수록되어 있다.

『진산세고』로 전하는 책이 더러 있기는 하나, 이 책은 원본이며, 지금까지 알려진 여러 판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다. 또한 그 시대 대가들의 글이 실려 있어, 역사 및 학술자료로서 가치가 높다.

서지 사항

4권 2책으로 구성되어 있고, 목판본이다. 4주쌍변이고, 반엽광곽은 17.5×13.7cm이다. 유계를 갖추고 있고, 규장각, 연세대학교 도서관, 장서각 등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이 책은 1658년(효종 9) 강희맹의 5대손 강유후(姜裕後)가 편집, 간행하였다. 책의 첫머리에는 이경석(李景奭)·정두경(鄭斗卿)의 서문이 있다.

권1·2는 강극성의 문집으로 권두에는 허목(許穆)이 쓴 행장이 있고, 오언고시 5수, 칠언고시 15수, 오언배율 4수, 칠언배율 11수, 오언율시 50수, 칠언율시 87수, 오언절구 19수, 칠언절구 83수, 육언절구 2수, 부(賦) 2편, 만사 2수, 기(記) 6편, 논(論) 2편, 묘지명 4편, 권3은 강종경의 문집으로 첫머리에 허목이 쓴 행장과 시 5수, 권4는 강진휘(姜晉暉)의 문집으로 1658년 허목이 쓴 행장과 시 15수, 부(賦) 2편이 수록되어 있다.

이 책은 원래 전집(前集)에 해당되는 것만 간행되었으나, 뒤에 속집을 붙여 건(乾)·곤(坤) 2책으로 중간되었다.

『진산세고』에 실린 백여 수의 시는 대략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 고려와 조선에 걸쳐 관료 생활을 하는 도중 지은 시, 국가적인 행사나 임무에 참가하여 지은 시, 개인적인 소회를 읊은 시이다. 그는 기본적으로 능력 있는 관료의 자질을 지닌 문인이었다. 따라서 대부분의 시는 관료로서의 포부와 함께 백성과 국가에 대한 근심을 드러내기 위해, 강개한 시구가 많이 쓰인다. 반면 외교 임무를 띠거나, 국가의 위상을 드러내야 하는 자리에 있어서는, 현실과는 상관없이 공적인 임무에 맞도록 화려하고 아름다운 시어를 활용하였다. 또한 개인적인 소회를 읊은 시들은 유자(儒者)로서의 깨달음에 기반한 노성한 품격을 드러낸다.

의의와 평가

『진산세고』가 연방집(聯芳集)의 백미로 꼽히고, 강희맹으로 이어지는 관각 문인의 시초가 강회백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강회백의 시문은 연구가 할 가치가 있다. 또한 고려의 멸망과 조선의 건국을 거치는 과정에서 유자(儒者)로 자처한 관료들의 시를 통해, 세상의 변화를 어떻게 형상화했는지 보여 주는 전범으로서도 의미가 있다.

참고문헌

  • 심우준, 「「晉山世稿」 四卷合本의 諸問題」, 『서지학연구』 제18호, 한국서지학회, 1999.
  • 안장리, 「姜希孟의 詩文學 연구」, 『한국인물사연구』 제9호, 한국인물사연구소, 2008.
  • 유풍연, 「晉山世稿 小考」, 『한자한문교육』 9권, 한국한자한문교육학회,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