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원(至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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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中國) 원(元)나라 세조(世祖) 대에 사용한 연호(1264년~1294년: 세조6~세조36).

그 외에

중국 원나라 순제(順帝) 대에 사용한 연호(1335년~1340년: 순제3~순제8).

개설

지원(至元) 연호는 원나라 시절 2번 사용된 연호이다.

우선 중국 원나라의 초대 황제인 세조가 이 연호를 사용하였는데(1264년~1294년), 세조는 1271년 몽골 제국의 국호를 원으로 변경하였으며, 이어 남송을 멸망시키고 중국을 통일 시킨 인물이다. 그는 지원 연간 동안 중앙아시아와 서역의 문화를 받아들여 다민족 통일 국가의 기반을 다졌다.

한편 고려에서는 원종(元宗)5년부터 충렬왕20년까지 지원 연호를 사용하였다. 이 무렵 원나라와 고려(高麗)의 관계는 상당히 긴밀하였는데, 고려의 왕인 충렬왕(忠烈王)이 원나라 공주와 결혼함으로써 고려가 원의 부마국(駙馬國)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긴밀한 관계 때문에 원나라가 일본을 침공할 때 고려는 이 원정에 참여할 수밖에 없었으며, 아울러 원나라가 고려의 내정에 깊게 관여하면서 고려의 자주권은 약화되어 갔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서는 조선(朝鮮)의 의례 및 제도 등을 정비하거나, 사회에 큰 사건이 발행하였을 때에 중국의 예를 검토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지원 연간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 인용되었다. 아울러 『태조실록(太祖實錄)』에서는 목조(穆祖)에 관한 기사에서 지원 연호를 찾을 수 있으며,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서도 지방의 유래 및 변천을 설명할 때에 지원 연호가 등장한다.

두 번째로 지원 연호를 사용한 황제는 원나라의 마지막 황제인 순제이다(1335년~1340년). 고려에서는 충숙왕(忠肅王) 두 번째 즉위 4년(충숙왕복위4)부터 충혜왕(忠惠王) 두 번째 즉위 원년(충혜왕복위1)까지 이 연호를 사용하였다. 즉위 때부터 정치에 관심이 없었던 충숙왕은 여러 차례 무고(誣告)를 받으면서 정사에 대한 관심이 더욱 없어졌고, 결국 1330년 태자에게 선위를 하였다.

그러나 원나라에서 충혜왕을 황음무도(荒淫無道)하다며 폐위하는 바람에 충숙왕은 다시 복위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에도 충숙왕은 정치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으나, 몇 가지 부분에서는 두드러진 업적을 남겼다. 원나라의 무리한 세공(歲貢)에 대한 삭감과 공녀 선발 등의 중지를 청원하였던 것이다. 이런 가운데 1339년 충숙왕이 사망하면서 충혜왕이 다시 왕위에 올랐다.

한편 지원1년인 1335년은 태조(太祖)이성계(李成桂)가 태어난 해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조선왕조실록』에서는 주로 이성계와 관련하여 지원 연호가 등장한다.

참고문헌

  • 『태조실록(太祖實錄)』
  • 『태종실록(太宗實錄)』
  • 『세종실록(世宗實錄)』
  •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 『중종실록(中宗實錄)』
  • 『선조수정실록(宣祖修正實錄)』
  • 『인조실록(仁祖實錄)』
  • 『현종개수실록(顯宗改修實錄)』
  • 『영조실록(英祖實錄)』
  • 『정조실록(正祖實錄)』
  • 『원사(元史)』
  • 『고려사(高麗史)』
  • 이현종 편, 『동양연표(東洋年表)』, 탐구당, 19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