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산부(竹山府)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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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죽산부 |
한글표제 | 죽산부 |
한자표제 | 竹山府 |
상위어 | 경기(京畿) |
동의어 | 개차산(皆次山), 개산(介山), 음평(陰平), 연창(延昌), 죽주(竹州) |
관련어 | 죽산도호부사(竹山都護府使), 죽산현(竹山縣) |
분야 | 정치/행정/관청 |
유형 | 집단·기구 |
지역 | 대한민국 |
시대 | 조선 |
집필자 | 김세민 |
폐지 시기 | 1895년(고종 32)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죽산부(竹山府)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세종실록』 9년 11월 2일, 『세종실록』 17년 12월 17일 |
조선시대에 죽산부를 관할하던 관청이자 행정구역.
개설
죽산부(竹山府)는 죽주(竹州)라는 이름으로 고려 성종 때 단련사(團練使)가 설치되었으나 목종이 폐하였다. 현종 9년에 광주(廣州)에 소속되었다가 1172년(고려 명종 2)에 감무(監務)가 설치되었다. 조선 건국 후 1394년(태조 3)에 경기도를 좌·우도로 나누고 좌도에 소속시켰다. 1413년(태종 13)에는 죽산(竹山)으로 이름을 고치고 현감(縣監)을 두었다. 1543년(중종 38)에 도호부(都護府)로 승격되었다. 1895년(고종 32)에 충주부 죽산군이 되었고, 이듬해에 경기도에 소속되었다.
설립 경위 및 목적
죽산부는 고려 때에는 죽주로 불렸던 지역으로 1172년(고려 명종 2)에 감무가 설치되었다. 조선이 건국한 후 1413년(태종 13)에 죽산으로 개칭되고 지방제도 개편에 따라 감무는 현감으로 바뀌었다. 1543년(중종 38)에 죽산현에서 비로소 죽산부로 행정단위가 정해졌다. 이후 선조와 인조 때 현(縣)으로 강등되기도 하였으나 중종 때 부(府)로 승격된 이후 대부분의 기간 동안 부사(府使)가 죽산을 관할하였다.
조직 및 역할
조선초기의 상황을 알 수 있는 『경국대전』에 따르면 죽산현에는 현감 1명과 훈도(訓導) 1명을 두었다. 훈도는 지방 향교의 교생을 지도하기 위해 생원·진사 중에서 선택하여 임명하였으나, 무록관이기 때문에 가지 않으려고 피하는 사람이 많았다. 지방의 향약이 활발해지면서 조선후기에 모두 폐지하였다. 조선후기에 발간된 『여지도서』에는 정3품의 부사(府使) 1명 외에 좌수 1명, 별감 3명, 아전 17명 등을 두었다. 좌수와 별감의 경우, 그 운영의 실제는 지역과 시대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군(郡)에는 대개 4~5명을 두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임무는 6방을 분장해서 좌수가 이·병방을, 좌별감이 호·예방을, 우별감이 형·공방을 맡아 수령의 자문에 응하고 풍기를 단속하며 향리를 규찰하는 등 수령을 보좌하는 것이었다. 지방 양반 중에서 나이가 많고 덕망이 있는 자를 추대하여 우두머리를 좌수, 차석을 별감이라 하여 수령이 임명하였다. 임기는 대개 2년이었다. 아전은 지방 관청의 하급 행정실무자로 이·호·예·병·형·공의 6방 등이다.
변천
죽산부는 고려초에 죽주로 이름을 고쳤고, 성종 때 단련사가 설치되었다가 목종 때 폐지되었다. 1018년(고려 현종 9)에 광주(廣州)에 소속되었다가, 1172년(고려 명종 2)에 감무가 설치되었다. 조선 1413년(태종 13)에 지방행정구역의 명칭이 개정될 때 이름을 죽산으로 고치고 현감을 두었다. 이때 단부(單府) 고을을 도호부로 고치고, 감무를 현감으로 고치고, 군(郡)과 현(縣) 중에서 이름에 주(州) 자가 들어가는 것은 모두 산(山)과 천(川) 자로 고쳐 부(府)·목(牧)과 구별하였다. 1427년(세종 9)에 죽산현이 500호(戶)가 되어 교도(敎導)를 임명하였다(『세종실록』 9년 11월 2일). 1435년(세종 17)에 충청도로부터 옮겨 경기도 수원부에 소속시켰다(『세종실록』 17년 12월 17일). 1543년(중종 38)에 도호부로 승격시켰고, 1584년(선조 17)에 현으로 강등시켰다가 1596년(선조 29)에 다시 부로 승격시켰다. 1628년(인조 6)에 역적이 살던 곳이라 하여 죽산부를 현으로 강등시켰다. 1635년(인조 13)에 여주토포사를 죽산부로 옮겨 설치하고 후영장(後營將)을 겸하게 하였다. 1895년(고종 32)에 지방제도가 개편되어 전국이 23개 부 337개 군으로 바뀔 때 충주부 죽산군이 되었다. 1896년(고종 33)에 23부제가 폐지되고 13도제가 시행될 때 경기도 죽산군이 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원일면·근삼면·원삼면·근일면 등이 용인군에 편입되고, 나머지 면이 안성군으로 편입되었다.
참고문헌
- 『경국대전(經國大典)』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경기(京畿) 죽산현(竹山縣)
- 『여지도서(輿地圖書)』경기도(京畿道) 죽산부(竹山府)
- 차문섭, 「중앙집권적 정치구조」, 『한국사』10, 국사편찬위원회, 19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