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도(울릉도)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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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죽도 |
한글표제 | 죽도 |
한자표제 | 竹島 |
관련어 | 독도(獨島), 울릉도(鬱陵島) |
분야 | 정치/외교/사행 |
유형 | 지명 |
지역 | 경상북도/ 대한민국 |
집필자 | 허지은 |
이칭 | 댓섬, 대나무섬, 대섬, 죽서도(竹嶼島), 우산도(于山島)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죽도(竹島)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숙종실록』 20년 2월 23일, 『숙종실록』 23년 2월 14일 |
경상북도 울릉군의 울릉읍 저동리에 위치한 섬.
개설
면적은 207,818㎡, 해발고도는 116m이다. 섬 둘레를 따라 도는 산책로는 약 4㎞ 길이이다. 울릉도 부속섬 44개(유인도 4, 무인도 40) 중 가장 큰 섬이다.
명칭 유래
울릉도 개척 당시에 대나무가 많이 자생하여 ‘대나무가 많이 자라는 섬’이라는 뜻으로 댓섬·대나무섬·대섬이라고 불렀으며, 한자로는 죽도(竹島)로 표기하였다.
자연 환경
직육면체 형상을 하고 있고, 상부는 수직에 가까운 절벽 위에 평평하게 수평을 이루며 사방은 해식으로 인한 절벽으로 여러 가지 형태의 기암괴석들로 둘러싸여 있다.
형성 및 변천
예전에는 죽서도(竹嶼島)라는 명칭으로 불리었고 고지도에서는 우산도(于山島)라고 표기되었다. 독도(獨島)와는 다른 섬이지만 일본에서 독도를 다케시마[竹島]로 부르고, 이를 한국어식으로 읽으면 죽도가 되는 모호함 때문에 독도와 혼동되는 경우가 있다. 1693년(숙종 19) 봄에 울산의 어부 40여 명이 울릉도에 배를 대었는데, 일본인의 배가 와서 박어둔(朴於屯)·안용복(安龍福) 2명을 잡아갔다. 그해 겨울에 대마도에서 정관(正官) 귤진중(橘眞重)으로 하여금 박어둔 등을 거느려 보내게 하고는, 조선 사람이 죽도에서 고기 잡는 것을 금할 것을 청하였다(『숙종실록』 20년 2월 23일).
1697년(숙종 23) 죽도 문제와 관련하여 비변사에서 회계한 내용 중에, “죽도는 바로 울릉도의 다른 이름이며, 조선의 땅으로 『동국여지승람』에 기재되어 있는 것을 일본에서도 분명하게 알고 있는데, 차왜(差倭)를 보내어 서계(書契)의 내용을 고쳐 달라고 청하니, 그간의 실정과 폐단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지금 왜인들을 왕래하지 못하도록 금하는 것을 현재의 도주(島主)에게 공(功)을 돌리니, 인책(引責)하는 의도가 두드러지게 나타나 있으나, 조정의 대체(大體)로 보아 지난 일을 다시 책망할 필요는 없습니다”라고 한 기록이 있다(『숙종실록』 23년 2월 14일).
위치 비정
와다리(臥達理) 해변에서 2㎞, 저동항(苧洞港)에서 북동쪽으로 4㎞, 도동항(道洞港) 에서 7㎞ 떨어진 해상에 자리 잡고 있다.
참고문헌
- 국토지리정보원, 『한국지명유래집(경상편)』,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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