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연집(珠淵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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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조선 제26대 왕 고종(高宗)의 시문집이다.

개설

이 책은 조선 제26대 왕인 고종의 시문집으로, 시(詩)·악장(樂章)·치가(致訶)·서(序)·제문(祭文)·논문(論文)·잡서(雜書) 등이 중요한 내용으로 되어 있다.

이러한 글들은 모두 일반 개인 문집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들로서, 당시의 통치제도나 중앙·지방의 사정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비는 대소신민들의 상소에 대한 하답을 말하는 것으로, 그 내용이 다양하다.

이 책에 실린 비 중에서 가장 많은 것이 관료들의 사직소에 대한 불윤비답(不允批答)이다. 다른 국왕의 문집과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글이 고종 자신이 직접 작성한 것이 아니고, 신료들이 작성한 것이나, 사료적 가치 면에서 볼 때 매우 중요하다.

『고종실록(高宗實錄)』은 『순종실록(純宗實錄)』과 함께 일제 때 일본인들에 의하여 편찬되어, 그들의 의도대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윤색하거나, 탈락시킨 부분이 많은 점에서 볼 때 한말의 정치·사회상을 살피는 데 새로운 사료가 될 것이다.

편찬/발간 경위

고종의 생애는 조선시대 말기와 대한제국 그리고 일제시대의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인물이다. 고종은 68세로 생을 마쳤는데 그의 한시는 총 37제(題) 39수(首)의 작품을 남겼다. 작품의 수는 많다고는 할 수 없어도 다양한 내용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이 시의 7할 이상이 20대에 지어진 것이다.

『주연집(珠淵集)』이 일제시대에 출판되었으니, 일제의 심기를 건드리는 작품들은 모두 빼버린 것으로 판단된다. 고종의 시들은 궁궐 내를 소요(逍遙)하며, 풍경을 읊기도 했고, 백성들의 생활을 걱정하는 군주의 마음, 동궁(東宮)에 대한 애정, 신하들에게 연회를 베풀며, 격려하는 작품, 신뢰하는 신하를 그리워하고, 애정을 표하는 시 등 다양 내용들이다.

이 책에 작품들은 그의 문집인 『주연집』에 실려 있다. 시를 지은 계절적인 배경은 총 18수 가운데 봄이 12수로 가장 많다. 시의 형태는 칠언절구가 19수로 가장 많으며, 율시(律詩)는 거의 없는 것으로 보아, 고종은 20자에서 28자로만 지어지는 절구(絶句)를 애용한 것은 적은 수의 글자로 자신의 시심을 표현하는 데 특장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또 하나의 큰 특징은 그의 작품이 거의 궐내(闕內)에서 지어졌고, 지금의 청와 지역인 신무문 바깥의 작품이 몇 수 있으나, 원유(遠遊)의 작품은 전무한 것이다.

서지 사항

40권 20책으로 구성되어 있고, 필사본이다. 사주쌍변이고, 반곽은 21.6×15.3㎝이다. 10행 20자의 반엽, 오사난, 상묵어미(上黑魚尾)를 갖추고 있고, 크기는 34.2×21.2㎝이며, 장서각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이 책에는 서문과 발문이 없어 편집 경위 및 필사 연도를 알 수 없다.

권1에 시 40수, 연구(聯句) 1편, 악장(樂章) 21편, 치사(致詞) 4편, 전문(箋文) 2편, 서(序) 4편, 권2에 비(碑) 24편, 행록 5편, 권3∼14에 제문 764편, 권15에 윤음(綸音) 21편, 권16∼21에 교(敎) 385편, 권22∼25에 조(詔) 269편, 권26∼29에 돈유(敦諭) 148편, 권30에 유서(諭書) 3편, 권31∼39에 비(批) 454편, 권40에 찬(贊) 1편, 명(銘) 1편, 상량문 2편, 잡저 1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시는 주로 옥류천(玉流川)·옥련정(玉蓮亭) 등 자연경관이나, 서설(瑞雪)·상춘(賞春)·춘사(春詞) 등의 계절변화, 그리고 세자나 신하들의 경사 때 지은 것이다. 악장·치사·전문 등은 모두 진연(進宴)이나, 진찬(進饌)을 거행할 때 지은 것이다.

서는 국가에서 주관한 관찬서(官撰書)나 개인의 문집을 편찬할 때 써준 것들이다. 『증보문헌비고서(增補文獻備考序)』는 1906년(광무 10)에 지은 것이다. 『증보문헌비고』의 원본은 영조 때 김치인(金致仁) 등이 편찬했던 것인데, 정조 때 이만운(李萬運) 등이 추보(追補)한 것을 다시 원본에 의거해 추가 보충, 재편집해 간행한다는 내용이다.

행록은 주로 왕후들의 일대기를 기록한 것이다. 일반 개인 문집의 행장과 같은 것이다. 그 중에는 왕후 민비(閔妃)에 대한 ‘명성황후행록(明成皇后行錄)’이 실려 있어, 민비에 대한 고종의 심정은 물론 수난의 우리나라 근대사를 살펴보는 데 도움을 준다. 이 글은 민비가 피살된 지 3년 뒤인 1897년(고종 34, 광무 1) 쓰인 것이다. 먼저 민비의 본가인 여흥민씨(驪興閔氏)의 가계(家系)가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고, 어린 시절·왕비책립·을미사변 등 민비의 일대기가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또한 우리나라 근대화 과정에서 일어났던 임오군란·갑신정변·동학란·갑오개혁·칭제건원(稱帝建元) 등 다난했던 근대사를 국왕의 입장에서 서술하고 있다. 특히 갑신정변의 주역 김옥균(金玉均)·박영효(朴泳孝)·홍영식(洪英植) 등을 갑오적신(甲午賊臣)이라 하고, 이들의 음모를 미리 처리하지 못한 것을 한탄한 내용이 주목된다. 이와 함께 을미사변 때에는 김홍집(金弘集)·유길준(兪吉濬)·조희연(趙羲淵)·정병하(鄭秉夏) 등을 사적(四賊)이라고 규정하고, 이들로 인해 외병(外兵)이 국내에 들어와 천하만고에 없는 대변인 을미사변을 일으켰다고 하고, 궐내에 있으면서도 황후를 보호하지 못했음을 자책하고 있다.

제문은 종묘·왕후·신하들에 대한 것으로, 비교적 짧은 문장이나 764편이나 되는 방대한 분량이다. 교는 국왕이 발하는 명령서·훈유서(訓諭書)·선포문을 말하는데, 황제가 발하는 경우는 조서라 한다. 따라서 1897년 연호를 광무라 고치고 고종이 광무황제로 바뀐 뒤의 교는 조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이 책에서 교와 조를 따로 분류했으나 그 성격은 같은 것이다. 윤음은 국왕이 대소 신료나 백성들에게 내리는 훈유문이다. 이 책의 윤음 내용을 보면 척사(斥邪)· 포충(褒忠)· 양로(養老) 등 다양한 내용이 실려 있고, 그 대상도 관료로부터 민서(民庶)에 이르는 일반 백성, 또는 일정한 지역의 관찰사·수령 등 필요에 따라 수시로 발한 것들이다.

의의와 평가

이 책도 다른 국왕의 문집과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글이 고종 자신이 직접 작성한 것이 아니고, 신료들이 작성한 것이기는 하지만, 사료적 가치 면에서 볼 때 매우 중요하다.

참고문헌

  • 김성혜, 「재위전기(1864-1876) 고종의 강연과 그 실태」, 『사학연구』 제93호, 한국사학회, 2009.
  • 김성혜, 「고종 재위 전기 강관의 구성(1864-1876)」, 『한국문화』 제46집, 규장각 한국학연구소, 2009.
  • 김성혜, 「고종 친정초기 차대를 통해 본 국정운영(1874-1876)」, 『이화사학연구』 제38집, 이화여자대학교 이화사학연구소, 2009.
  • 박소현, 「고종황제와 약방기생 석경월」, 『대한토목학회지』 제56권 제4호 통권 제336호, 대한토목학회, 2008.
  • 박희문, 「高宗皇帝의 漢詩」, 『한국사상과 문화』 제55집, 한국사상문화학회,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