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찬역(佐贊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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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죽산(竹山)에 위치했던 역.

개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좌찬역(佐贊驛)은 죽산 북쪽 50리(약 19.6㎞) 지점에 위치하였다. 고려시대에 광주도(廣州道) 소속 역이었으며, 조선시대에는 양재도(良才道) 소속 역으로 편성되었다.

내용 및 변천

죽산 북쪽 50리 지점에 위치했던 좌찬역은 고려시대부터 그 존재가 확인되고 있다. 고려시대에는 광주도 소속으로, 죽주(竹州: 조선시대에 죽산으로 개명)에 위치하고 있었다. 좌찬역은 『세종실록』「지리지」에 경기좌도충청도정역찰방(京畿左道忠淸道程驛察訪) 소속의 역으로 편성되었다. 이후 어느 시점에 양재도의 소속 역이 되었으나, 1460년(세조 6)에 좌찬역은 양재역 등 22역과 함께 경기좌도찰방(京畿左道察訪)의 소속으로 변동되었다(『세조실록』 6년 2월 5일). 전국적인 역도제(驛道制)의 정비가 시행되는 1462년(세조 8)경 양재도가 복구되면서 다시 양재도 소속의 역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좌찬역은 『경국대전(經國大典)』에 양재도 소속 역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1796년(정조 20) 양재도가 영화도(迎華道)로 개칭된 후에는 영화도 소속이 되었다.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의하면, 좌찬역에는 말 6마리, 역노(驛奴) 9명이 배속되어 있었다고 한다.

좌찬역은 한양에서 용인과 죽산을 거쳐 충주와 청주 방면으로 향하는 교통로상에 위치하였다. 북쪽으로는 용인의 김령역(金嶺驛), 남쪽으로는 죽산의 분행역(分行驛)과 연결되었다.

1896년(고종 33) 1월에 대한제국 칙령 제9호 ‘각 역 찰방 및 역속 폐지에 관한 건’에 따라 전국의 역들이 폐지되면서 좌찬역도 폐지되었다.

좌찬역의 위치는 현재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좌항리에 해당된다.

참고문헌

  • 『경국대전(經國大典)』
  • 『대전회통(大典會通)』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여지도서(輿地圖書)』
  • 정요근, 「高麗·朝鮮初의 驛路網과 驛制 연구」,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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