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호탕(醍醐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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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철에 더위에 상하지 않기 위해 음료수 대용으로 애용했던 약식(藥食) 처방.

개설

제호탕(醍醐湯)은 더운 여름 더위에 상하지 않도록 하거나 갈증을 그치는 효능으로 여름철에 끓인 물 대신에 복용한다.

『의방유취』 「중서(中暑)」조에는 비위를 도와 소화가 잘되게 하고 더운 여름 갈증을 해소하는 데 유익할 뿐 손해는 없으며, 임의대로 끓여먹거나 차게 해서 먹는다고 소개하였다. 『구급이해방』「중서(中暑)」조에는 제호탕이 더위 먹은 것을 풀어주고 갈증을 그치는 데 매일 달여 먹거나 혹은 얼음물로 복용한다고 했다, 『의림촬요』에도 동일한 내용으로 한여름에 끓인 물[熟水] 대신 복용한다고 했으며, 『동의보감』에는 제호탕이 더위를 식혀주고 번열(煩熱)을 내려준다고 했다. 19세기의 『의방활투』에는 『동의보감』의 내국방을 인용하여 더위와 갈증 해소에 처방하였다.

제조법

백청(白淸) 1두, 오매(烏梅) 가루 10냥, 백단향(白檀香) 가루 8돈, 축사(縮砂) 가루 4돈, 초과(草果) 가루 3돈을 달여 사기그릇에 담은 후 끓인 물이나 얼음물에 타서 복용한다.

효능

여름철 서기(暑氣)나 서독(暑毒)으로 인한 갈증을 풀어준다.

생활·민속 관련 사항

조선시대 왕실에서는 여름철에 제호탕을 자주 복용하였다. 이에 내의원에서 매년 단오에 각 전궁(殿宮)에 제호탕을 공급하였다. 영조가 동몽교관(童蒙敎官)이 가르치는 유생들에게 『소학』을 시험한 후 수박[西瓜]과 제호탕(醍醐湯)을 하사하였다는 기록이 있다(『영조실록』 36년 7월 25일). 『승정원일기』에는 인조대에 노쇠한 사람의 정신이 혼몽하고 번갈(煩渴)이 지속되는 증세를 치료하기 위해서 제호탕을 복용했다는 기록이 있고, 19세기 말에 고종이 더운 여름을 이기기 위해 신하들에게 제호탕을 선사했다고 전해진다. 특히 조선후기에는 일반 사대부가에서도 여름철 음료용으로 제호탕을 제조하였는바, 『산림경제』에는 『동의보감』의 처방과 다른 다양한 제호탕 제법이 소개되어 있다. 이를 통해 조선후기에 여러 가지 응용 처방들이 개발되었음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 『의방유취(醫方類聚)』
  • 『구급이해방(救急易解方)』
  • 『의림촬요(醫林撮要)』
  • 『동의보감(東醫寶鑑)』
  • 『산림경제(山林經濟)』
  • 『의방활투(醫方活套)』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