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구팔황(庭衢八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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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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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정구팔황 |
한글표제 | 정구팔황 |
한자표제 | 庭衢八荒 |
관련어 | 소주합루(小宙合樓), 호월일가(胡越一家) |
분야 | 정치/용어 |
유형 | 개념용어 |
지역 | 대한민국 |
시대 | 조선후기 |
왕대 | 조선후기 |
집필자 | 이근호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정구팔황(庭衢八荒)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정조실록』 16년 11월 6일 |
조선후기 정조가 자신의 침전에 써서 붙인 편액의 하나로, 먼 변방도 뜰처럼 가까이한다는 의미의 용어.
개설
조선후기 정조가 자신의 침전(寢殿)에 걸어 놓은 편액 중 하나에 써진 글씨로, 먼 변방도 뜰처럼 가까이한다는 의미이다. 정조의 인사 정책에 대한 의지를 표현한 글이다.
내용 및 특징
조선후기 정조는 자신의 침전에 ‘탕탕평평실(蕩蕩平平室)’이라는 편액을 달고, ‘정구팔황(庭衢八荒) 호월일가(胡越一家)’라는 8글자를 크게 써서 창문 위에다 걸어 두고 아침저녁으로 눈여겨보면서 교훈으로 새겼다고 한다. 『동국여지비고(東國輿地備考)』에 따르면, 편액을 건 곳은 창덕궁 중희당 옆 소주합루(小宙合樓)이다. ‘정구팔황’이란 먼 변방도 뜰처럼 가까이한다는 뜻이고, ‘호월일가’는 서로 관계가 소원하거나 거리가 먼 곳도 한집안처럼 여긴다는 뜻이다.
변천
정구팔황은 당나라 시인인 이교(李嶠)가 지은 「대주강선비(大周降禪碑)」에서 등장하는 개념이다. 이는 정조가 사람을 등용할 때 한쪽에 치우침이 없도록 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정조는 남인의 이가환(李家煥)을 등용한 것은 이 정신에 따른 것이라고 천명한 바 있다(『정조실록』 16년 11월 6일).
참고문헌
- 『동국여지비고(東國輿地備攷)』
- 『전당문(全唐文)』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