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거(停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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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일정 기간 동안 과거를 보지 못 하게 하던 제도.

개설

정거는 죄를 범한 유생과 관인 등에게서 일정한 기간 동안 과거에 응시할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다. 그 죄가 엄중한 경우에는 평생 과거에 응시할 기회를 박탈하기도 하였다.

설립 경위 및 목적

정거는 과거제를 시작한 고려시대부터 있었다. 즉, 1116년(고려 예종 11) 11월의 판문(判文)에 “모든 과거에서 처음 응시하는 자와 한 번 정거를 당한 자에 대해서는 정한 법식에 의거해 심문하고, 연속하여 응시한 자는 단지 가장(家狀)에 흠이 있고 없는 것만을 검사하여 응시하게 한다.”고 한 데서 짐작할 수 있듯이, 정거는 과거 제도 운영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난 제재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정거는 과거에서 부정행위를 했을 때에만 내려진 처분이 아니었다. 과거와 다소 무관한 일로, 이를테면 유생이 시를 지어 사장(師長)을 비방했다든가[『성종실록』 4년 3월 7일], 왕실에서 불사(佛事)를 거행하는 것을 반대하는 상소를 올린 성균관 유생 21명이 과격한 표현을 썼다고 하여(『연산군일기』 1년 1월 26일), 정거 처분을 받은 경우도 있었다.

정거가 ‘유생에게 가하는 처벌 중에서는 가벼운 편이었다.’라고 한 견해도 있다. 그러나 성종이 ‘유생을 징계하는 데에는 정거만 한 것이 없다.’고 한 것처럼, 과거를 통해 벼슬길로 나아가고자 공부하는 유생들에게, 설사 한시적이라고 하더라도 과거 응시 자격 정지는 매우 두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정거는 철저히 유생들을 겨냥한 벌이었다. 그 목적은 법적·도덕적으로 문제가 될 만한 유생들의 행위를 징계하고 막는 데 있었다.

조직 및 역할

정거는 대개 한시적으로 적용되었고, 간혹 ‘영영정거(永永停擧)’와 같이 무기한 지속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이 경우는 예외로 간주되었다. 대체로 1식년(式年, 3년), 2식년, 10년 등으로 그 기간이 정해졌다.

변천

『조선왕조실록』에 나타나는 정거 관련 기사는 조선초기부터 보이지만, 조선후기 숙종부터 정조 재위 기간에 가장 많이 보인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대전회통(大典會通)』
  • 송준호, 『이조 생원진사시의 연구』, 국회도서관, 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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