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혜의원(慈惠醫院)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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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자혜의원 |
한글표제 | 자혜의원 |
한자표제 | 慈惠醫院 |
관련어 | 국공립병원(國公立病院), 대한의원(大韓醫院), 동인의원(同仁醫院), 조선총독부(朝鮮總督府) |
분야 | 문화/의학·약학 |
유형 | 집단·기구 |
지역 | 대한민국 |
시대 | 대한제국 |
집필자 | 목수현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자혜의원(慈惠醫院) |
1909년부터 8월부터 1920년대까지 지방에 1도 1병원으로 세운 근대식 병원.
개설
자혜의원(慈惠醫院)은 1909년부터 지방에 설립된 국공립병원이다. 1905년 서울에 대한의원이 개설된 이래 각 도마다 하나씩 주요 도시에 세워진 국립병원으로, 원장과 의관(醫官)은 일본군 군의가 맡아서 근대 의약·의료 장비로 의료 업무를 수행하였다.
설립 경위 및 목적
자혜의원은 1909년 8월 21일 칙령 제75호로 반포된 「자혜의원 관제」에 의하여 설립되었으며, 1909년 12월부터 전국에 설치되기 시작하였다. 1910년 8월에 반포된 「자혜의원 특별회계법」에 따르면 자혜의원의 운영은 의원 자체 수입과 45,000원 한도 내에서 정부 지출금을 지원받아 충당하였다.
자혜의원의 설립은 중앙에 집중된 의료 혜택을 지방민에게도 미치게 하여 빈궁자에게 진료 혜택을 주려는 의도에서 비롯되었다. 특히 1910년 관제를 개정하고 잇따라 수원, 공주, 청주, 대구, 평양 등 지방 도시에 자혜의원을 개설한 것은 구제 기관을 전국으로 확대함으로써 조선총독부의 시정에 대한 조선인들의 반감을 희석시키고자 하는 의도도 포함되었다.
조직 및 역할
자혜의원은 1910년 9월에 경기도 수원과 충청남도 공주, 충청북도 청주, 강원도 춘천, 경상남도 진주, 함경남도 경성, 평안북도 의주, 황해도 해주, 전라남도 광주 등에 잇따라 설립되었으며, 대구와 평양에 있던 동인의원(同仁醫院)도 자혜의원으로 계승되었다.
자혜의원의 조직은 원장, 의원, 조수, 서기, 통역으로 구성되었다. 부서로는 의무과, 약제과 및 서무과를 두어, 각기 환자의 진료 및 의학 교육에 관한 사항, 조제, 제제 및 위생 재료의 보관 수리에 관한 사항, 서무 회계에 관한 사항을 담당하였다.
자혜의원의 진료는 원칙적으로 무료로서, 일본인의 경우 거류민단이나 학교 조합, 헌병대, 경찰서 등의 증명서를 요구했지만 조선인은 특별한 증명서가 없이도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혜택에는 한계가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무료 진료는 점점 축소되어 갔기 때문이다.
자혜의원은 진료 기관뿐 아니라 관립 의료 기관으로서, 지방의 공의 및 일반 개업의를 지도하며, 위생상 중추 기관으로서 위생 환경을 개선하는 역할도 담당하였다. 또한 지방에서 필요한 산파 및 간호사를 양성하는 의학 교육 기관 역할도 담당하였다.
변천
서양 의료의 혜택을 입지 못했던 지방민과 빈궁자들이 무료로 진료를 받을 수 있게 되자 자혜의원으로 몰려들었다. 예상 이상으로 번창하자 총독부는 1912년 이후 도청 소재지에 한정되어 있던 병원을 교통이 불편하여 의료 혜택을 못 받고 있는 곳을 우선 대상으로 하여 소규모 지역으로까지 점차 확대해 나갔다. 따라서 이때 제주, 안동, 평안북도 초산, 강원도 강릉, 함경북도 회령이 추가로 선정되었다. 1916년에는 전라남도 소록도에, 1920년대에도 군산, 순천, 혜산진, 개성, 남원, 진주 등에 잇따라 개설되었다. 지방민에 대한 의료 행위를 확산시키는 방법의 하나로 순회 진료도 마련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조선인에 대한 의료 혜택은 점차 축소되어 갔으며, 1920년대 초에는 자혜의원이 도 지방비로 운영되는 도립 의원이 되었다. 재정이 충분하지 못한 도립 자혜의원은 무료로 치료해 주는 시료환자가 아닌 일반 외래 환자를 진료하는 일반 의료 기관으로 변화하였다.
참고문헌
- 『대한제국관보(大韓帝國官報)』
- 『조선총독부관보(朝鮮總督府官報)』
- 『황성신문(皇城新聞)』
- 『매일신보(每日新報)』
- 박윤재, 『한국근대의학의 기원』, 혜안, 2005.
- 여인석 외, 『한국의학사』, KMA 의료정책연구소,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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