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정문(資政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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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궁의 편전인 자정전으로 들어서는 정문.

개설

1616년(광해군 8)에 경덕궁의 영건이 시작되어 1620년(광해군 12)에 영건 공사가 모두 끝났다. 이때 경덕궁의 정전으로 숭정전(崇政殿)이 건립되었으며, 숭정전 북쪽에 편전인 자정전(資政殿)이 건립되었다. 자정전의 남쪽 회랑에 자정문(資政門)이 편전의 정문으로 조성되었다. 숭정전에서 자정전에 이르는 길은 지형이 가파르고 폭이 좁아 자정문으로 들어서는 계단이 높다.

위치 및 용도

자정문은 경희궁의 편전인 자정전의 정문이며, 정전인 숭정전의 북쪽으로 연결된다. 자정문은 자정전의 남회랑에 있는데, 자정전과 숭정전을 잇는 일직선 축에서 서쪽으로 치우쳐 있다. 이러한 위치적 특성은 숙종의 빈전을 자정전에 설치하였을 때 문제가 되기도 하였다. 자정전에서 빈전 의례 기간을 모두 마친 숙종의 재궁을 발인하려 할 때 자정문 밖 지형의 경사가 매우 급하고 협소한 데다, 자정문이 서쪽에 치우쳐 있어 논란이 된 것이다. 결국 숭정전 내부까지 흙을 보토하여 경사로를 만들고 자정문 동쪽 행각을 철거하고서야 윤여를 설치하여 발인할 수 있었다.

변천 및 현황

광해군대에 건립된 자정전은 1868년(고종 5) 무렵 철거된 것으로 추정된다. 고종 대에 이르러 경희궁은 빈 궁궐이 되었다. 1868년에 경복궁이 완공되자 경희궁은 이궁으로 사용되지 못했으며, 경복궁 공사에 필요한 목재를 위해 경희궁의 건물이 철거되기도 했다. 1868년에 경희궁의 공허지를 경작지로 분배할 즈음에 자정전과 자정문도 사라졌다. 1985년에 숭정전지 발굴을 시작으로 하여 1989년에 숭정전 복원이 이루어지고, 1998년에 자정전과 자정문도 복원하였다. 현재 경희궁에서 볼 수 있는 자정문은 1998년에 복원한 것이다.

형태

자정문은 경희궁의 편전인 자정전 남회랑에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로 설치되었다. 기둥 상부에는 익공이 짜이며 겹처마를 갖춘 팔작지붕이다.

관련사건 및 일화

경종과 정조는 경희궁에서 즉위식을 하였는데, 이때 숙종과 영조의 빈전이 모두 자정전에 마련되었다. 즉위식을 시작하기에 앞서 왕위를 계승받는 사왕(嗣王)은 자정문 밖 막차에서 조복(朝服)을 입고 빈전이 마련된 자정전에 들어 유교와 대보를 받아들고 자정문을 통해 숭정문에 이르러 즉위식을 했다(『정조실록』 즉위년 3월 10일).

참고문헌

  • 『[숙종]국장도감의궤([肅宗]國葬都監儀軌)』
  • 단국대학교 박물관·경희궁지발굴조사단, 『정비 복원을 위한 경희궁지발굴조사보고서』, 단국대학교 박물관, 1985.
  • 박성진, 「일제강점기 경희궁 전각의 훼철과 변화」, 『대한건축학회 학술발표대회논문집』 제26권 제1호(통권 제50집), 2006.
  • 은정태, 「고종시대의 경희궁-훼철과 활용을 중심으로-」, 『서울학연구』34,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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