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정(仍停)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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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잉정 |
한글표제 | 잉정 |
한자표제 | 仍停 |
관련어 | 정퇴(停退), 정봉(停捧), 퇴한(退限), 구환(舊還) |
분야 | 경제/재정/환곡 |
유형 | 개념용어 |
지역 | 대한민국 |
시대 | 조선 |
왕대 | 인조 |
집필자 | 양진석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잉정(仍停)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정조실록』 21년 1월 6일 |
흉년에 곡물을 수확하기가 어려울 때 환곡을 거두기를 중지하도록 하였으나, 다음 해에도 다시 거둘 수 없어서 한 해를 더 연장하는 조치.
내용
흉년(歉歲)에 환곡을 거두기 힘들어지면 정퇴(停退)라 하여 정봉하거나 퇴한(退限)하는 조치가 따랐다. 정봉은 환곡을 거두기를 중지하는 조치이며, 퇴한은 기한을 늦추어 주는 조치였다. 정봉하는 행위는 기한의 정도에 따라 명칭이 달라졌다. 정봉이 다음 해까지 연장되면 잉정(仍停)이라 하였으며, 그다음 해까지 연장되는 것을 구환(舊還)이라 하였다. 그러나 때로는 잉정을 구환과 혼동하여 사용하는 경우도 있었다.
매년 가을이 되면 조정은 농사의 풍흉을 살피고, 연분에 따라 거두는 비율을 정하였다. 이때 주된 정퇴의 대상은 원회곡(元會穀)·상진곡(常賑穀)·비변사곡(備邊司穀)의 삼사곡(三司穀)이었으며, 이들 곡물 외에는 정퇴가 허락되지 않았다.
국가에 경사스러운 일이 있으면 정봉하는 조치에 머물지 않고, 잉정·구환을 거쳐 환곡의 일정 비율 혹은 구체적인 양을 정하여 은택을 베푸는 차원에서 탕감(蕩減)하는 조치가 따를 때도 있었다. 재해가 심한 연도에 넉넉하게 구휼하거나 특지로 환곡의 일부가 탕감될 때도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들은 다음 해에 분급할 환곡을 마련하여야 한다는 점에서 지속적인 정봉의 조치는 결과적으로 환곡의 축소를 가져오는 것을 의미하였다.
용례
蠲濟州甲寅停退還穀五百餘石 牧使柳師模馳啓言 甲寅停退條中 絶戶所食五百九十八人 指徵無處 減雖云有例 事係特恩 姑爲仍停 備邊司以跡涉依違 請推考 敎曰 本牧甲寅民事 尙何言哉 數百包鬼錄 年年侵困 爲島民未決之案 則是與前春不惜萬金帑需之本意 豈不相反 特拔糴簿 俾有始終之惠(『정조실록』 21년 1월 6일)
참고문헌
- 『비변사등록(備邊司謄錄)』
- 『국조보감(國朝寶鑑)』
- 『홍재전서(弘齋全書)』
- 『만기요람(萬機要覽)』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