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一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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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장기현에 속하며 대마도와 구주 사이에 위치한 섬.

개설

일기는 한반도와 일본열도 구주(九州) 사이에 징검다리처럼 위치하며, 선사시대 이래 대마(對馬)와 함께 중국대륙·한반도와 일본열도를 왕래할 때 중요한 통로와 중계지로서 역할을 해온 섬이다. 현재의 행정구역명은 장기현 일기군(壹岐郡)이다.

자연 환경

지리적으로는 부산에서 대마 북단의 비다승(比多勝)까지가 약 49.5㎞, 대마 엄원(嚴原)에서 일기까지가 약 68㎞, 일기에서 당진(唐津) 호자(呼子)까지 약 26㎞로 일기에서 대마는 맑은 날이면 서로 바라볼 수 있는 거리에 위치해 있다.

섬의 규모는 동서 약 14.8㎞, 남북 17.2㎞, 면적 약 138.12㎢로 타원형의 본도와 부속 도서로 구성되어 있다. 험준한 산지가 대부분인 대마에 비하여 일기의 지형은 비교적 완만한 편이며, 해발 100m를 넘는 산이 적어 섬의 최고봉은 해발 212.9m인 다케노쓰지(岳の辻)이다. 옛날에는 산방(山方)이라고 불리는 산림이 많았으며, 근세에는 해안을 따라 간척이 이루어지면서 논이 증가하였다. 주로 쌀·보리·콩·종자(種子)를 생산한다. 좋은 어장이 풍부하여 근세에는 포경(捕鯨)이 활발하였다. 노어[鰤]·멸치·오징어·해조류가 많다.

형성 및 변천

일기는 선사시대 이래 일본열도에서 한반도를 왕래할 때 중요한 기항지였다. 일기와 고대 한반도와의 교류 양상을 엿볼 수 있는 대표적인 유적으로 하루노쓰지(原ノ辻)를 들 수 있다. 하루노쓰지는 미생시대 전기 말부터 고분시대 전기 초두에 걸쳐 존속한 대규모 환호취락으로, 그 규모와 내용을 보아 『위지(魏志)』「왜인전」에 기록된 일지국(一支國)의 수도로 추정되고 있다.

일본 중앙정부가 안정되었을 때에는 삼도(三島), 즉 대마·일기·송포(松浦)는 대륙과 일본열도를 잇는 중요한 통로였지만, 그렇지 못할 때에는 왜구의 소굴이 되기도 하였다. 고려말에 해당하는 13세기 이후 일본이 남북조의 내란기에 들어가면서 막부의 지방통치력이 약해진 틈을 타 많은 왜구들이 중국 연안과 한반도 연안에 창궐하여 약탈을 자행하였는데, 일기를 비롯한 삼도는 왜구의 근거지가 되기도 하였다.

고려의 대일 정책을 계승한 조선은 일기와 대마에 군사를 보내 왜구 단속을 시도하였다(『태조실록』 5년 12월 3일).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은 평화적인 통교자로 전환시키기 위한 정책을 펴기도 하였는데, 그 결과 조선초기에는 일기에서 사자를 파견하고 토산물을 바치며 조선에 합법적으로 통교할 수 있도록 증명해 주는 인장인 도서(圖書)를 증여해 줄 것을 요청해 오기도 하였다(『문종실록』 즉위년 6월 30일)(『문종실록』 즉위년 12월 2일).

조선후기 일본에 통신사가 파견될 때 일기는 통신사의 기항지이기도 하였다. 1607년 제1차 회답겸쇄환사(回答兼刷還使)부터 1811년 신미통신사에 이르기까지 통신사 일행은 강호(江戶)에 갈 때 11회, 귀국하는 길에 8회에 걸쳐 일기에 입항하여 접대를 받았다. 일기의 풍본포(風本浦)에서 머물러 접대를 받았는데, 통신사 일행은 삼사(三使)는 5수두(手斗), 상상관은 4수두, 상관은 3수두, 중관은 2수두, 하관은 2수두 반의 양식을 받았다.

참고문헌

  • 『증정교린지(增正交隣志)』
  • 吉川弘文館, 『國史大辭典』, 1989.
  • 다나카 소이치, 「일기에서 보는 한일 문화교류: 이키와 쓰시마의 비교」, 『대구사학』 91, 대구사학회,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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