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李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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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기에 국가를 상징하고, 순종의 재위 기간에는 황실을 상징하던 문장으로 사용된 오얏꽃 문양.

개설

1892년(고종 29) 주화의 문양으로 처음 등장하였다. 이때부터 이화 혹은 오얏꽃 문양은 국가의 훈장부터 군복, 우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곳에서 사용되었다. 1895년(고종 32) 서구식 군복 제도가 도입될 때는 모표와 단추에 이화 문장이 이용되었다. 1906년(광무 10)부터는 문관 대례복과 군복에 전면적으로 이화 문양이 사용되었다. 1908년(융희 2) 2월에는 칙령 9호에 따라 근위기병대 하사 이하 예복이나 동궁 직원의 복장과 장예원 악사장 이하의 복장에서 모포 및 견장, 단추 등에 이화 문양이 채택되었다. 1909년(융희 3)에는 칙령 33호에 따라 감옥관의 복제도 이화 문양이 사용되었다. 이외에도 궁내부 예복의 경우 코트 형식의 긴 웃옷 앞길의 깃에서 자락 사이에 옆으로 누운 이화를 금실로 수놓았다.

1900년(광무 4)에 만들어진 훈장조례에서는 훈장의 이름과 뜻을 풀이하였는데, 이화에 대해 “나라 문양에서 취한 것”이라고 하였다(『고종실록』 37년 4월 17일). 1901년에는 이화 우표가 발행되기도 하였다. 순종이 등극할 때에 내린 훈장에도 이화가 사용된 것이 수여되었다(『순종실록』 즉위년 9월 19일).

내용 및 특징

대한제국기에는 황실의 의례적 행사에 이화 문양이 자주 사용되었다. 황실을 나타내는 의장 및 기물, 정기적 연회나 의례적 행사에 이화 문장이 새겨져 활용되었다. 이화가 곧 황실을 상징하는 의미로 확대 사용된 것이다.

특히 1907년(융희 1) 순종의 즉위 이후에는 황제의 어기(御旗)에 금색 이화장(李花章)이 표현되어 대한제국 황실을 상징하는 문장임을 드러내었다. 순종의 어기는 경운궁에서 창덕궁으로 이궁(離宮)하면서 본격적으로 사용되었다. 황제의 어기는 고종대에도 있었으나 이화문이 들어간 것은 순종대가 처음이었다. 이후 순종이 한반도의 남쪽과 북쪽을 순행할 때 훈장, 우표, 마차 등 각종 기물들에 이화를 다양하게 사용하였다. 순행 시 이화가 표현된 어기는 행렬의 선두에 배치된 것은 물론 순종이 승차하던 열차에는 늘 황제 옆에 위치하였다. 따라서 이화를 대한제국 황실의 상징으로 본격적으로 사용한 것은 순종이 제위에 오른 이후라고 본다.

변천

1910년 대한제국이 일본에 의해 병합된 이후에도 이화는 계속 사용되었다. 대한제국 황실이 이왕가로 재편되면서 그 상징으로 이화가 이용되었기 때문이다. 다만 이때 사용된 이화는 대한제국 황실이 아닌 일본 천황가에 부속된 이왕가로 축소되었고 왜곡된 의미로 표현된 것이었다.

참고문헌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일성록(日省錄)』
  • 국사편찬위원회, 『고종시대사』, 1967.
  • 국사편찬위원회, 『대한계년사』, 1971.
  • 이태진, 『고종시대의 재조명』, 태학사, 2000.
  • 목수현, 「한국 근대 전환기 국가 시각 상징물」,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8.
  • 목수현, 「대한제국기 국가 시각 상징의 연원과 변천」, 『미술사논단』27, 2008.
  • 목수현, 「망국과 국가 표상의 의미변화 : 태극기, 오얏꽃, 무궁화를 중심으로」, 『한국문화』53,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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