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언(易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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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인 정관응이 사회 개혁을 위해 서양의 제도를 도입하자고 1871년에 저술하여 1880년 홍콩에서 간행한 책.

개설

『이언(易言)』은 1880년(고종 17)에 김홍집이 대표였던 2차 수신사 일행이 일본에 파견되었다가 귀국하면서 주일본 청국공사관의 참찬관황준헌(黃遵憲)이 건네준 『조선책략(朝鮮策略)』과 같이 국내에 들여온 책이다. 『일사집략(日槎集略)』에서는 1881년(고종 18) 7월 10일에 황준헌이 김홍집의 수행원이었던 이헌영에게 작별의 정을 고하면서 『명치사요(明治史要)』, 『사동술략(使東述略)』, 『일본잡사시(日本雜事詩)』, 『해방억측(海防臆測)』과 같이 『이언』을 주었다고 하였다. 따라서 이헌영이 『이언』을 받은 뒤 김홍집에게 전해 고종에게 진상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이언』은 청나라인 정관응(鄭觀應)이 서양 제국주의에 대처할 방법으로 서양의 만국공법 체제를 수용하자고 주장한 책이다. 정관응은 광동인으로 과거에 실패한 뒤 상해로 이주하여 상업에 종사했다. 아편전쟁을 거치면서 『구시게요(救時揭要)』, 『이언』을 집필하여 청나라인이 서양인에게 대처할 방법은 변하는 것이며, 그 방법은 서양의 만국공법 체제를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정관응의 주장은 당시 양무운동을 주도하던 리홍장의 관심을 끌었다. 리홍장은 양무운동의 진행을 위해 서양식 현장 실무와 이론에 밝은 사람을 등용하고자 했다. 리홍장은 정관응에게 상해전보국 등 양무기업의 요직을 맡겼다. 정관응은 청일전쟁 이후에 『성세위언(盛世危言)』을 집필하여 산업 개발과 대외무역 증진 등의 부국강병을 역설하였다. 그의 저술은 광서제를 비롯하여 청나라의 지식인들에게 광범위하게 호응을 받았다. 『이언』은 청나라가 서양 제국주의 침략에 대응하면서 국내의 개혁을 진척시킬 대안을 제시한 책이었다. 당시 조선정부는 일본과 러시아의 도전을 비롯하여 서구 열강의 도래에 대처할 방법을 찾던 중이었으므로 이 책은 조선의 관료들과 지식인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내용 및 특징

1882년(고종 19)에 지석영(池錫永)은 『이언』을 비롯하여 『만국공법(萬國公法)』, 『조선책략』, 『격물입문(格物入門)』, 『격치휘편(格致彙編)』 등에 국력을 강화하고 외적을 방어하는 대책이 실려 있다고 주장하였다(『고종실록』 19년 8월 23일).

『이언』의 책명은 『시경』「소아(小雅)」 소변(小弁)의 “군자는 쉽게 이야기하지 말라.”는 구절에서 차용했다. 한문본은 상하 2책으로 1880년판은 36편이고 1882년판은 20편으로 줄여 편집하였다. 1883년(고종 20)에 고종이 이 책의 교감복간을 지시하였고, 이에 따라 한문본 2권 2책과 정리자본(整理字本)을 이용한 4권 4책의 한글본이 간행되었다. 한글본에는 판심에 ‘이언’이라고 되어 있다.

한글본 4권 중에서 1권의 목차는 9개 항목으로 논공법(論公法), 논세무(論稅務), 논아편(論鴉片), 논상무(論商務), 논개광(論開礦), 논화거(論火車), 논전보(論電報), 논개간(論開墾), 논치한(論治旱)이다. 2권은 9개 항목으로 논기기(論機器), 논선정(論船政), 논주은(論鑄銀), 논우정(論郵政), 논염무(論鹽務), 논유력(論游歷), 논의정(論議政), 논고시(論考試), 논이치(論吏治)이다. 3권은 7개 항목으로 논변방(論邊防), 논교섭(論交涉), 논전교(論傳敎), 논출사(論出使), 논수사(論水師), 논화기(論火器), 논연병(論練兵)이다. 4권은 13개 항목으로 논민단(論民團), 논치하(論治河), 부모군의(附某君議), 논허비(論虛費), 논염봉(論廉俸), 논서리(論書吏), 논초공(論招工), 논의도(論醫道), 논범인(論犯人), 논서류(論棲流), 논차관(論借款), 논과족(論裹足)이다.

1권의 「논공법」은 중국 고대의 하·은·주 3대부터 춘추시대까지를 봉건의 천하, 진나라가 전국을 통일한 이후부터 청나라 말기까지를 군현의 천하라고 규정하였다. 공법에 대해서는 세계 각국이 스스로 만국 중의 하나임을 인식하고 서로 연결되어 있고 통할하려 하지 않는 도라고 설명하였다. 특히 중국 자신의 율례(律例)와 만국공법의 같고 다름을 따져서 동일한 것은 서로 지키고 다른 것은 각자 자기의 옳음을 시행하되 다른 편에 해를 미치지 않게 하고 그 가운데에 위치한 것은 서로 절충하여 결정하자고 주장하였다.

변천

『이언』은 조선 지식인들에게 큰 영향과 호응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조선의 정국에 큰 영향을 미친 『만국공법』의 내용이 난해했던 것에 반해 『이언』은 중국인이 서술한 간략하고 명백한 내용을 담았기 때문이다. 『이언』에 대한 당시 지식인들의 대표적인 의견으로 1883년(고종 20) 초에 윤학선(尹善學)이 올린 상소를 들 수 있다. 그는 『이언』을 본 뒤 치세(治世)의 요체라고 했고, 저자 정관응이 변통에 통달하고 변화를 아는 인사라고 칭송했다. 또한 당시의 세상이 과거 중국의 진·한·당 시대와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고 했다.

참고문헌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일성록(日省錄)』
  • 『조선책략(朝鮮策略)』
  • 국사편찬위원회, 『대한계년사』 , 1971.
  • 국사편찬위원회, 『同文彙考』, 1978.
  • 국사편찬위원회, 『修信使記錄』, 1971.
  • 국사편찬위원회, 『陰晴史』, 1958.
  • 이태진, 『고종시대의 재조명』, 태학사, 2000.
  • 鄭觀應, 『易言』, 홍문각, 1992.
  • 中央硏究院近代史硏究所, 『淸季中日韓關係史料』, 1972.
  • 이광린, 「‘易言’과 韓國의 開化思想」, 『韓國開化史硏究』, 일조각, 1981.
  • 이광린, 「韓國에 있어서의 萬國公法의 受容과 그 影響」, 『東亞硏究』1 ,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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