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득(李善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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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출생의 미국 군인이자 외교관으로, 일본 정부와 조선 정부의 고문을 지낸 인물.

개설

이선득은 르젠드르(Charles Le Gendre)의 한자식 표기이다. 1830년에 프랑스 올렝에서 출생한 르젠드르는 왕립렝스학교(Royal College of Reims)에서 수학하였으며, 파리대학(University of Paris)을 졸업하였다. 1855년에 미국인 클라라 빅토리아(Clara Victoria Mulock)와 결혼한 후 미국으로 이주함으로써 미국 국적을 획득하였다. 그 뒤 남북전쟁에 참전하였는데 1862년 3월과 1864년 5월에 전투에서 부상을 입었다. 결국 1864년 10월에 전역하였으며, 1865년 3월에 준장으로 명예 진급하였다.

1866년 7월에 르젠드르는 중국 하문(厦門) 주재 미국영사로 임명되었다. 1867년 3월에 미국 상선 라버(Rover)호가 대만 해안에 좌초하였는데, 대만인들이 미국 승무원을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르젠드르는 미국 군함을 타고 직접 대만으로 가서 미국 상선이 좌초된 지역과 대만인의 살해 행위를 직접 조사하였다. 조사를 마친 후 복주(福州) 지역의 청 관리에게 대만에 군사를 파견할 것을 요구하는 한편, 개인 소유의 군함을 대만으로 파견하였다. 결국 르젠드르는 대만 지역에서 난파한 미국인과 유럽인 선원의 안전을 보장하는 조약을 성사시켰다.

1871년에 유구(琉球) 선박이 대만에 좌초하자 르젠드르는 대만으로 가서 난파 선원의 안전에 관한 조약의 적용 범위를 일본인으로 확대시키고자 하였지만, 성공을 거두지 못하였다. 그 후 르젠드르는 1872년에 미국으로 귀국하는 도중 일본에 들렀는데, 외무대신 부도종신(副島種臣, [소에지마 타네오미])은 르젠드르를 외교 및 군사 고문으로 임명하였다. 르젠드르는 부도종신 일행과 함께 1872년 12월에 북경으로 가서 대만인의 유구인 살해사건에 관한 청일 교섭에 참여하였으며, 1874년에는 일본의 대만 출병을 기획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하지만 르젠드르는 영사관 근무지를 이탈한 죄목으로 상해에서 체포됨으로써, 이후 일본의 대만 출병에 관여할 수 없었다. 1875년에 외교관을 은퇴한 후 1890년까지 개인 자격으로 대외중신(大隈重信, [오쿠마 시게노부])의 고문 역할을 수행하면서 일본의 개혁에 관한 건의서를 제출하기도 하였다. 그중에는 일본이 제국으로 성장하기 위한 정치적·사회적 요건에 관한 글과 조선·대만 침공을 주장한 글도 있었다.

한편 1884년 11월에 르젠드르는 신호(神戶, [고베])를 거쳐서 조선을 방문하였다가 갑신정변을 경험하였는데, 당시 청국인들이 르젠드르를 위협한 일이 일본 언론에 보도되기도 하였다. 르젠드르는 1890년에 고종의 초청으로 조선으로 건너와서 조선 정부의 고문이 되었으며, 1899년 9월 2일에 서울에서 사망하였다(『고종실록』 36년 9월 2일).

가계

르젠드르의 아버지 장 프랑소아 르장드르(Jean-François Legendre-Héral)는 당대 유명한 화가이자 조각가로서 파리국립고등미술학교(L’Ecole de Beaux-Arts)의 교수를 역임하였다. 르젠드르의 장인은 미국의 변호사이자 외교관을 지낸 윌리엄 뮬록(William Mulock)이다. 한편 르젠드르는 이혼하지 않은 상태에서 1872∼1873년경에 일본 후쿠이번의 번주였던 송평경영(松平慶永, [마쓰다이라 요시나가])의 사생 딸과 결혼하였다. 둘 사이에 태어난 아들은 유명한 가부키 배우 시촌우좌위문(市村羽左衛門, [이치무라 우자에몬]) 15세이며, 그의 손녀딸은 1930~1940년대 이름을 떨친 소프라노 관옥민자(關屋敏子, [세이키야 토시코])이다.

활동 사항

1890년 2월에 고종은 르젠드르를 통리군국사무아문(統理軍國事務衙門)의 협판으로 임명하였다(『고종실록』 27년 2월 19일). 임명 당시 청 정부는 일본 정부의 고문을 역임하고 특히 대만 침공에 관여한 사실을 들어서 르젠드르의 임명을 반대하였다. 그러나 고종은 르젠드르의 임명을 강행하였는데, 그 이유는 일본차관(일본 차관의) 도입을 통해서 청국 차관을 상환하고 관세권과 해관운영권을 회복하자는 르젠드르의 조선부국책이 고종의 반청자주화 정책과 뜻을 같이하였기 때문이었다.

1890년 3월부터 르젠드르는 고종의 명령을 받아서 일본으로부터 차관을 제공받기 위한 교섭을 진행하였다. 르젠드르는 해관세를 담보로 1,500,000원의 차관을 확보하고자 하였으나, 일본 내 그의 후원자였던 대외중신이 외무대신에서 실각하였고, 일본 정부의 각종 사업비 증가로 인해서 차관 교섭은 실패로 끝났다. 그러자 르젠드르는 상해 현지 은행과 미국 은행 및 미국인 자본가들과 차관교섭을 진행하였으나, 청의 개입과 원세개의 요청을 받은 조선 관료들이 차관도입에 반대함으로써, 차관교섭은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조일통상장정을 통해서 일본 어민들에게 부여한 제주도 인근 해역에서의 어업권이 제주도민의 생존권을 위협하였다. 이에 조선 정부는 1891년에 르젠드르를 일본에 파견해서 일본 정부와 제주도 어업권에 관한 재협상을 진행하도록 하였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르젠드르와의 협상을 회피하고 궁극적으로는 어업권 회수를 반대하였다. 그리고 1892년 10월에 신임 일본 외무대신 육오종광(陸奥宗光, [무쓰 무네미쓰])은 제주도에서 일본인 조업 금지의 대가로 전라도 항구의 개항과 부산 절영도에 일본 조계지 설치를 요구하였다. 르젠드르는 일본 측 제안에 긍정적이었으나, 고종이 이를 반대함으로써 르젠드르가 주도한 어업에 관한 조항의 개정은 성공을 거두지 못하였다.

1894년 청일전쟁 발발 후 일본의 간섭을 받은 조선 정부는 르젠드르를 해고하고자 하였다(『고종실록』 31년 8월 10일). 하지만 고종과 정부 내부에서는 일본의 고문직 독점을 막기 위해서 르젠드르를 계속해서 고용하려는 움직임도 있었으며, 일본 내부에서도 르젠드르를 통해서 자신들의 세력을 확대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한편 일본에 우호적이지 않았으며, 주조선 러시아 공사 베베르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였던 르젠드르는 1895년 9월에 베베르와 명성황후 민씨 세력인 이학균과 박종화의 추천으로 궁내부 고문으로 발탁되었다(『고종실록』 32년 7월 15일).

명성황후 시해사건 이후 르젠드르는 1897년에 의정부 찬성에 임명되었고, 군주권을 약화시키려는 독립협회와 대립하고, 교전소 및 법규규정소 임원으로 대한국국제를 반포하는 과정에 참여함으로써 고종의 황제권 강화에 도움이 되었다(『고종실록』 34년 3월 23일)(『고종실록』 36년 8월 17일). 한편으로는 프랑스 회사가 경의철도부설권을 획득하는 데 후원함으로써, 열강의 이권 침탈 현상을 방조하였다.

저술 및 작품

Reports on Amoy and the Island of Formosa, Government Printing Office, 1871.

Is Aboriginal Formosa a Part of the Chinese Empire?, Lane, Crawford, 1874.

Progressive Japan: A study of the Political and Social Needs of the Empire, C. Levy, 1878.

묘소

서울 마포구 합정동 양화진 외국인 묘역

상훈 및 추모

1875년, 일본 정부는 르젠드르에게 육일장(旭日章)을 수여하였다.

참고문헌

  • 「특론서판무사이선득(特論書辦務事李善得)」(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소장, MF35-004670).
  • 『이안(李案)』(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 규2 0952).
  • 『Charles W. Legendre 문서』(국사편찬위원회, 한 024.91 L511c v.1~4).
  • 국사편찬위원회 편, 『프랑스 외무부 문서』, 국사편찬위원회, 2002~2004.
  • 권석봉, 「이선득의 파일(派日)과 청측 개입: 특히 제주어채영파교섭(濟州漁採永罷交涉)을 중심으로」, 『백산학보』 8, 1970.
  • 김현숙, 『근대 한국의 서양인 고문관들』, 한국연구원, 2008.
  • 김현숙, 「대한제국기 미국인 고문관 문서 해제」, 『한국 근현대사 연구』 31, 2004.
  • 김현숙, 「고문관 러젠드르(C. W. LeGendre: 이선득)의 경제개발안과 화폐개혁안의 성격: 부국책(1883년)을 중심으로」, 『경제사학』 30, 2001.
  • 김현숙, 「한말 고문관 르젠드르(李善得)에 대한 연구」, 『한국 근현대사 연구』 8, 1998.
  • 김희연, 「1892년 조일 어업관련 조약개정 교섭과 국제관계」, 『한국사연구』 70, 2015.
  • Palmer, Spencer J. ed, Korean-American Relations: Documents Pertaining to the Far Eastern Diplomacy of the United States, Ⅱ: The Period of Growing Influence, 1887-1895.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