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산현(殷山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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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평안도 은산현 지역을 관할하던 관청이자 행정구역.

개설

은산현(殷山縣)은 1415년(태종 15)에 자산군(慈山郡)에서 분리되어 설립되었다. 1895년(고종 32)에 평양부 은산군이 되었다.

설립 경위 및 목적

은산현은 고려시대 983년(고려 성종 2)에 읍격은 은주방어사(殷州防禦使), 읍호는 은주(殷州)로 불리다가 조선이 건국한 후 1415년(태종 15)에 은산현이 되었다. 다른 이름으로 동창(同昌), 흥덕(興德)이라고도 불렀다.

조직 및 역할

은산현은 고려시대에 감무(監務)를 두었고, 조선이 건국한 후 1413년(태종 13)에 감무를 종6품의 현감으로 바꾸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현감과 훈도(訓導) 각 1인을 두었으나 이후에 훈도를 폐지하였다. 종6품의 현감은 지방행정관서인 현의 책임자로 수령의 임무를 수행하였고, 종9품의 훈도는 교관으로 지방 향교에서 교육을 담당하였다. 조선후기 영조 때 편찬된 『여지도서』에 의하면 소속 관원으로는 좌수 1명, 별감 2명, 도감 3명, 감관 5명, 중군 1명, 군관행수 2명, 병방군관 2명, 별장 1명, 천총 1명, 파총 2명, 기고관 4명, 영장 2명, 초관 12명, 아전 29명, 통인 19명, 사령 22명, 군뢰 6명, 관노 45명, 관비 35명이 있었다.

변천

은산현은 고려시대에 동창군(同昌郡)으로 불리다가 983년(고려 성종 2)에 은주방어사로 불렸다. 이후 은주로 불리다가 1391년(고려 공양왕 3)에 감무를 두었다. 조선이 건국한 후 1413년에 지방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군·현의 이름 가운데 주(州) 자를 가진 것은 모두 산(山) 자와 천(川) 자로 고쳤는데, 이때 은주를 은산(殷山)으로 바꾸고 감무를 현감으로 바꾸었다(『태종실록』 13년 10월 15일). 이듬해인 1414년(태종 14)에 자산군에 통합하였다가 1415년에 분리하여 은산현이 설립되었다. 1895년에 지방제도를 개편할 때 평양부 은산군이 되었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경국대전(經國大典)』
  • 『대전회통(大典會通)』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여지도서(輿地圖書)』
  • 이존희, 「조선초기의 수령제도」, 『역사학보』30·31 합집, 19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