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정기(六丁旗)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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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육정기 |
한글표제 | 육정기 |
한자표제 | 六丁旗 |
상위어 | 노부(鹵簿), 의장(儀仗), |
관련어 | 노부대장(鹵簿大仗), 대가노부(大駕鹵簿), 전정대장(殿庭大仗) |
분야 | 왕실/왕실의례/예기 |
유형 | 물품·도구 |
지역 | 대한민국 |
시대 | 조선 |
집필자 | 강제훈 |
용도 | 의장용(儀仗用)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육정기(六丁旗)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세종실록』 오례 가례 서례 노부 대가의 노부 |
조선시대 왕의 행차 및 공식 행사에서 왕권의 상징으로 쓰이던 여섯 기의 의장기.
개설
육정기는 60간지(干支)에서 10개의 천간(天干) 중 정(丁)이 들어가는 간지를 신격화하여 형상화한 의장기이다. 도교에서는 육갑(六甲)과 육정(六丁)을 신격화하는데, 육정신은 미래를 예지하고 물건을 움직이는 신통력이 있다고 한다. 고려에서 조선초기까지 육정신은 하늘의 별에게 제사하는 초제(醮祭)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조선의 의장기로 육정기가 포함되어 있는데, 가장 규모가 큰 대가노부(大駕鹵簿)와 전정대장(殿庭大仗) 등 왕의 의장에만 사용된다.
연원 및 변천
중국에서는 10개의 천간과 12개의 지지(地支)를 결합해서 60개의 간지를 형성하여 날짜의 표기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하였다. 천간의 으뜸인 갑(甲)에 지지가 결합한 간지를 육갑이라 하여 양(陽)에 속하는 신으로 인식하였다. 이에 상대하여 육정은 음(陰)에 해당하는 신의 개념이 형성되었다. 육갑이 남신을, 육정이 여신을 상징한다.
조선의 육정기가 도교 신의 개념에서 유래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기의 상부에 신의 형상을 그리고 하단에 12지에 해당하는 신수(神獸)를 그리고 있기 때문에 신을 표시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육정기에 상대되는 육갑기는 채택되지 않았는데, 이유는 확실하지 않다.
육정기의 배치가 정확한 방위 개념에 의해 설정된 것은 틀림없다. 노부를 설명하고 있는 기록에서 육정기는 좌우에 배치된다고만 기술하기 때문에 정확한 배치 순서를 알 수 없는데, 『조선왕조실록』과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배반도(排班圖)에서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12지지는 자(子)를 정북으로 하여 순서대로 방향을 표시한다. 조선에서는 이들 중 갑과 결합되는 지지를 제외하고 정과 결합하는 지지는 방위의 순서대로 배치하였다.
상징 의장의 선두가 되는 홍문대기(紅門大旗)를 기준으로 문관인 동반(東班)에 해당하는 좌측에 정사(丁巳)·정묘(丁卯)·정축(丁丑) 순서로, 무관인 서반(西班)에 해당하는 우측에 정미(丁未)·정유(丁酉)·정해(丁亥)의 순서로 배치된다. 정과 결합된 12지(支)는 좌측에 남쪽에 해당하는 사(巳), 동쪽에 해당하는 묘(卯), 북쪽에 해당하는 축(丑)을 순서대로 배정하였다. 이와 상대하여 우측에는 남쪽에 해당하는 미(未), 서쪽에 해당하는 유(酉), 북쪽에 해당하는 해(亥)를 순서대로 배치하였다.
이렇게 정돈된 배치는 세종 때 완성되었다. 정종과 태종의 발인반차(發引班次)에 나타나는 육정기의 배치는 방위의 배열이 혼재되어 있지만, 『세종실록』「오례」에서 12지를 남쪽에서 북쪽을 상징하는 순서대로 배치하고 있다(『세종실록』 오례 가례 서례 노부 대가의 노부). 이러한 배치 원칙은 성종 때 편찬된 『국조오례의』에 그대로 수용되었다.
육정기는 고려 때 가장 규모가 큰 법가노부(法駕鹵簿)에서도 의장기로 채택되지 않았다. 조선에서 도교적 유래를 가지고 있는 육정신을 왕 의장에 포함시키게 된 경위는 확실하지 않다. 조선후기에도 육정기는 배제되지 않고 그대로 사용되었다.
행차 시에 육정기는 방향을 나타내는 주작기(朱雀旗)와 하나의 짝을 이루고 있다. 가운데 붉은색의 주작기가 위치하고 좌측에는 정사기와 정묘기가 배치되는데 동쪽을 상징하는 청색기이다. 우측에는 정미기와 정유기가 있는데, 서쪽을 나타내는 흰색기이다. 이들 뒤에 정축기와 정해기가 위치하는데, 북쪽을 상징하는 흑색기이다.
육정기는 왕의 행차 때 사용되는 노부의 대가와 궁궐 행사에 배치되는 전정의 대장 등급에서만 편성된다. 육정기는 등급이 낮은 법가와 소가(小駕), 혹은 반장(半仗)과 소장(小仗) 등급에서는 사용하지 않으며, 왕비와 왕세자 의장에도 적용되지 않는다.
형태
육정기는 상단에 여신의 형상을 머리 부분만 그리고, 중간에 글자를 형상화하여 부적 문양을 나타내고, 하단에는 해당 12지의 신수를 그렸다. 바탕색으로 흑색과 청색, 흰색을 사용하는 각각의 방위에 부합되는 색을 채용하였다. 바탕색에 의해 구분하면 정축기와 정해기가 흑색 바탕이고, 청색 바탕은 토끼 형상이 있는 정묘기와 뱀 형상을 넣은 정사기에 적용되고, 흰색 바탕은 양 형상의 정미기와 닭 형상이 있는 정유기에 적용되었다.
정축기는 흑색 바탕에 위에는 여신의 형상을 그리고, 아래에 소의 머리 모양을 그리고 있다. 그림 주변은 청색·적색·황색·백색의 네 가지 채색을 하였고, 기의 주위에는 화염각(火炎脚) 장식을 달았다. 정묘기는 청색 바탕에 정축기와 동일한 방식으로 만들어지는데, 몸통이 되는 부적 문양이 다르고 토기 문양을 둔 점이 다르다. 정사기는 청색 바탕이고 문양과 뱀 형상을 그리고 있다. 정미기는 백색 바탕에 독특한 문양과 양의 머리 형태를 두었고, 정유기는 백색 바탕에 닭의 머리를 형상화했다. 정해기는 흑색 바탕이고, 독특한 문양과 함께 돼지 머리 모양을 그리고 있다.
생활·민속 관련 사항
육정신은 도교적 유래를 갖는 신으로 민간에서도 숭배의 대상이었고, 조선초기에는 국가에서 제사를 시행하기도 하였다. 육정신은 여신으로 남쪽 방향과 불을 상징하면서 신력을 발휘하는 존재이지만, 육갑과 함께 군사적 역량을 가진 신장(神將)으로 개념화되었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 『춘관통고(春官通考)』
- 『통전(通典)』
- 『문헌통고(文獻通考)』
- 『대명집례(大明集禮)』
- 『제사직장(諸司職掌)』
- 『삼재도회(三才圖會)』
- 袁珂, 『중국신화대사전』, 華夏出版社, 1998.
- 강제훈, 「조선전기 국왕 의장제도의 정비와 상징」, 『사총』77, 2012.
- 김지영, 「조선시대 典禮書를 통해 본 御駕行列의 변화」, 『한국학보』31-3,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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