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강(遠江)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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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원강 |
한글표제 | 원강 |
한자표제 | 遠江 |
동의어 | 원주(遠州) |
관련어 | 빈명호(濱名湖) |
분야 | 정치/외교/사행 |
유형 | 지명 |
지역 | 일본 |
집필자 | 허지은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원강(遠江)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태종실록』 7년 5월 24일 |
일본 정강현(靜岡縣) 서쪽 지역을 일컫던 옛 지명.
명칭 유래
수도인 경도(京都)에서 멀리 있는 담수호(淡水湖)인 빈명호(濱名湖)가 있는 국이라는 의미에서 원강국(遠江國)이라고 하였다. 반면에 경도에서 가까이 있는 담수호인 비파호(琵琶湖)가 있는 국은 근강국(近江國)이 되었다.
형성 및 변천
646년 일본에서 조정 안의 혁신파가 벌인 대규모 정치 개혁인 대화개신(大化改新)이후 소하(素賀)·구노(久努) 등의 여러 국이 통합되어 성립하였다. 남북조(南北朝)시대에는 금천씨(今川氏)·사파씨(斯波氏)가 군사와 민정을 감독하는 직책인 수호(守護)가 되었다. 후에 금천씨의 영지가 되었다.
조선과는 교류가 많지는 않았지만, 1407년(태종 7) 원강국에서 조선에 예물을 바치고 도적을 금할 뜻을 고하였다는 기록이 있다(『태종실록』 7년 5월 24일). 조선초 조선 정부는 왜구에 대한 문제를 교린(交隣)의 차원에서 처리하였다. 특히 일본과의 교린 관계는 당시 일본의 실세였던 실정막부 정권에 한정된 것이 아닌 구주의 대내씨, 소이전(小貳殿), 대마도주(對馬島主) 등과 교류하는 등 다원적으로 이루어졌다. 조선 정부는 그들에게 조공(朝貢)을 허락하여 경제적 대가를 주는 한편 왜구의 단절을 강력히 요구하였다.
금천씨가 멸망한 후에는 덕천가강(徳川家康)이 지배하였고, 강호(江戸)시대에는 빈송(濱松)·괘천(掛川)·횡수하(横須賀)·상랑(相良) 등 여러 번으로 분할되었다.
1871년 명치(明治) 신정부에서 번을 폐지하고, 지방통치기관을 중앙정부가 통제하는 부(府)와 현(縣)으로 일원화한 폐번치현(廢藩置縣)을 시행하면서 굴강현(堀江縣)이 되었다가 빈송현(濱松縣)을 거쳐 1876년에 정강현에 통합되었다. 원주(遠州)라고도 불리었다.
위치 비정
태평양(太平洋)에 면하고 있으며, 대정천(大井川)과 빈명호 사이에 있다.
참고문헌
- 『日本大百科全書』, 小學館, 1987.
- 國史大辭典編集委員會, 『國史大辭典』, 吉川弘文館, 1999.
- 吉田茂樹, 『日本地名大事典』, 新人物往來社, 2004.
- 三省堂編修所, 『日本地名事典』, 三省堂, 2007.
- 平凡社地方資料センタ, 『日本歷史地名大系』, 平凡社, 19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