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遼陽)

sillokwiki
이동: 둘러보기, 검색



중국 요녕성의 지명. 기원전 3세기에서 기원후 17세기까지 중국 동북 지역의 정치·경제·문화·교통·군사 중심지.

개설

요양은 기원전 3세기에서 기원후 17세기까지 중국 동북 지역의 정치·경제·문화·교통· 군사 중심지였던 도시이다. 거란족이 세운 요(遼)나라의 수도였으며, 명대에는 군사중진(軍事重鎭)이자 요녕에서 가장 발달한 도시였다. 1621년 누르하치[奴爾哈赤]는 요양을 점령하고 이듬해 이곳을 수도로 정하기도 하였다.

명칭 유래

요가 발해를 멸망시키고 그 유민을 다스리기 위하여 동단국(東丹國)을 건설하고, 뒤에 오경의 하나로 동경요양부(東京遼陽府)를 두었는데 그것이 현 지명의 유래이다.

자연 환경

중국 요녕성 중부 태자하 중류에 위치하고 있으며, 심양에서 약 70㎞ 정도 떨어져 있다. 연평균 기온은 10℃이며 연평균 강수량은 700㎜이다.

형성 및 변천

하(夏)·은(殷)시대에 지금의 요양은 영주(營州)에 속하여 있었으며 이는 자연을 경계로 지역을 구분한 것으로 국가 행정단위의 의미는 지니고 있지 않았다. 주(周)대에는 요양이 유주(幽州)에 속하였다. 10세기경 거란이 흥기하면서 요(遼)를 세우고 태조인 야율아보기(耶律阿保機)가 요동성을 공격하여 점령한 뒤 요양부(遼陽府)를 설치하였다. 928년 요의 태종 야율덕광(耶律德光)이 제위에 오르면서 요양부를 남경(南京)으로 이름을 고치고 배도(陪都: 또 하나의 수도)로 삼았다. 이후 요가 발해를 멸망시키고 세운 동단국의 수도로 삼았다. 938년 남경을 동경(東京)으로 고치고 요양부를 설치하였다. 1116년 금(金)이 군사를 일으켜 동경요양부를 함락시키고 요의 제도를 그대로 이어받아 요양을 동경이라 칭하고 배도 중의 하나로 삼았다. 1269년 원(元)은 요양을 동경총관부(東京總管府)로 고치고 1287년에 요양등청행중서성(遼陽等處行中書省)을 세웠다. 명(明)은 요동의 주현을 폐지하고 1386년 요동도사(遼東都司)를 건립하여 치소를 요양에 두어 25개의 위(衛)와 2개의 주(州)를 관할하게 하였다. 명대 요양은 요동 지역을 다스리는 군사중진(軍事重鎭)이자 요동에서 가장 발달한 지역이었다. 따라서 명의 북경으로 향하던 조선 사신은 대부분 요양을 거쳐 갔다.

1621년 누르하치는 요양성을 점령하고 다음 해에 수도를 요양성으로 옮겼다(『광해군일기』 13년 3월 28일). 누르하치는 요양성 동쪽 태자하(太子河) 동안(東岸)에 새로이 성을 수축하고 동경성(東京城)이라고 칭하였다. 청은 1653년 요양부를 설치하였으나 1657년에는 기존의 요양부를 철폐하고 요양현을 설치하였으며 봉천부(奉天府)에 귀속시켰다. 1664년에는 다시 현을 고쳐 요양주(遼陽州)를 설치하고 봉천부의 관할로 예속시켰으며 치소는 지금의 요양시에 두었다. 1907년 동삼성독무판사요강(東三省督撫办事要綱)을 제정하여 요양주를 설치하고 봉천부의 관할에 두었다. 현재 중화인민공화국의 요녕성 요양시이다.

참고문헌

  • 遼陽市志編纂委員會辦公室 編, 『遼陽要覽』, 新化出版社, 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