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가(甕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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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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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옹가 |
한글표제 | 옹가 |
한자표제 | 甕家 |
동의어 | 능상각(陵上閣), 묘상각(墓上閣), 원상각(園上閣) |
관련어 | 수도각(隧道閣) |
분야 | 왕실/왕실의례/흉례 |
유형 | 건축·능·원·묘 |
지역 | 대한민국 |
시대 | 조선 |
왕대 | 태조~순종 |
집필자 | 정해득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옹가(甕家)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정조실록』 10년 6월 11일 |
능(陵)·원(園)·묘(墓)의 봉분을 조성할 자리에 임시로 설치하는 뜸집.
내용
광(壙)을 파서 회격을 만들고 다시 묻는 과정 동안 눈·비·바람과 햇빛으로부터 작업공간을 보호하기 위해 설치한다. 소나무로 구조물을 만드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1786년(정조 10) 정조는 문효세자(文孝世子) 묘소를 조성하면서 대나무의 사용을 검토하기도 하였다. 50척의 긴 재목을 써야 옹가를 지을 수 있으나 10자 짜리 재목도 준비하기 어렵고, 설치할 때 위험하여 사람이 다치기도 하기 때문이었다.
옹가의 제작 방법은 『춘관통고(春官通考)』에 기둥 17개를 사용하는 것으로 제시되었으나 현륭원(顯隆園)을 조성할 때는 18개를 사용하였다. 기둥을 원형으로 둘러 세우고 정남(正南)쪽에 문을 만든다. 둥근 마룻대를 기둥 상단부에 설치하여 기둥을 연결한다. 그 위에 서까래 18개를 다는데 끝을 모아 원추형으로 만든다. 서까래는 세목(細木)을 이용하여 벌어지지 않게 고정한다.
서까래 위에 산목(散木)을 촘촘하게 배열하고 모둔(茅芚)을 덮는다. 동서의 둥근 마룻대 위에 각각 창을 설치하고 유둔(油芚)으로 막는다. 안에는 두개의 서까래를 세워서 버팀기둥이 되게 하고, 앙장(仰帳)과 방유(旁帷)를 설치하여 마감한다. 남쪽 문에는 수도각(隧道閣) 2칸 반을 잇대어 세우고 유둔, 모둔, 곡초(穀草)로 덮는다.
용례
甕家之制 必須半百尺之長材 然後可成 造作之際 易致傷人 而長材之中 其十尺者 又難辦 命易以竹(『정조실록』 10년 6월 11일)
참고문헌
-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 『국조상례보편(國朝喪禮補編)』
- 『현륭원원소도감의궤(顯隆園園所都監儀軌)』
- 『춘관통고(春官通考)』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