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량합(兀良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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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세기 때부터 역사서에 등장한 유목 민족으로, 원 제국 이후 시기 몽골의 중요 구성원 중 하나.

개설

올량합(兀良哈)은 몽골의 부족 중 하나인 우량하이(Uriangqai, Урианхай)를 한자식으로 음차한 것이다. 사료에 따라 우량한(Uriyangqan), 또는 우량하드(Uriyangqad)라고도 한다. 우량하이는 『요사(遼史)』에 올랑한(嗢娘罕)으로,『원사(元史)』와 『몽골비사』에는 올량합(兀良哈)·올근해(兀哏孩)로, 청나라 사료에는 오량해(烏梁海)으로 각각 표기되었다.

우량한이라는 명칭은 8세기에 한문 사료에 최초로 확인되었다. 우량한으로 불린 집단은 8세기 경 흥안령 주변에 거주하다가 10세기경 그 일부가 이주하여 오늘날 몽골국헨티 산맥 부근에 거주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몽골연합체의 한 구성원으로서 칭기즈칸의 몽골 통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몽골사를 기록한 14세기 페르시아어 사료인 『집사(集史)』에 따르면, 칭기즈칸 시기에는 우량하드는 북쪽 삼림지대에 사는 삼림 우량하드와 초원지대에 사는 초원 우량하드라는 두 종류가 있었다고 한다. 자연환경에 따라 전자는 수렵에 종사하고 후자는 목축업에 종사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몽골제국의 시대에 활약하였던 우량한 부(部) 출신으로는 칭기즈칸의 이른바 ‘4마리의 개([四狗], dörben noqas)’ 중 하나인 젤메(Jelme)와 수베데이(Sübegedei) 장군 등이 유명하였다.

내용 및 특징

역사서에서 우량하이를 지칭하는 대상 범위는 매우 넓으며 지금까지 우량하이라는 명칭으로 불린 종족의 계통 또한 매우 다양하였다. 이들은 크게 몽골계 및 튀르크(Türk)계, 그리고 만주퉁구스계로 구별되었다.

13세기 초 칭기즈칸에 의한 천호제 편입 과정에서 우량하이가 몇 집단으로 나뉜 것으로 추측된다. 당시 일부 우량하이는 칭기즈칸 등 몽골 대칸들의 묘지를 지키는 임무를 맡아 헨티 산맥 부근에 살았다. 원나라 이후 동몽골을 구성하였던 6개의 만호(tümen) 중 하나는 우량한(Uriyangqan)이었으며 이들은 헨티 산맥에 살던 우량하이의 후예로 보인다. 우량한 만호는 몽골 대칸 정권에 여러 번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켰기 때문에 1530년대 말 우량한 만호를 폐지하여 다른 만호에 나누어 예속시킨 것이었다. 이후 그들은 할하 만호에 소속되어 점차 서진하여 오늘날 몽골국 서부에 거주하게 되었다. 곧 할하의 게레센제(Geresenje) 홍타이지가 7명의 자식에게 속민과 영유지를 나누어 줄 때 우량한은 막내아들인 사무부이마(Samu buyim-a)에게 분봉되었다. 이들 우량하이는 만주 지배기 때 2개의 호쇼([旗], qosiγu)로 편성되었는데 그 후예들은 오늘날 몽골국고비알타이 아이막(aimag=province)에 살고 있다. 또한 그들 우량하이 일부는 후흐누르(청해성) 지역으로 이주하였는데 그들로 하여금 또 한 개의 호쇼를 편성하여 후흐누르 몽골(현 청해성)에 예속시켰다.

조직 및 역할

또한 서몽골, 즉 오이라트 안에 일부 우량하이가 있었는데 13~14세기경 오이라트에 속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알타이산 부근에 거주하면서 오이라트 준가르 제국의 통치를 받았다. 18세기 중엽 준가르 제국이 청나라에 멸망당하면서 이들 우량하이는 4개의 호쇼로 편성되어 홉드 지방에 예속되게 되었다. 현재 그 후예들은 몽골국홉드 아이막 및 바얀울기 아이막에 살고 있다.

그리고 원나라 이후 시기에 흥안령 부근에 이른바 우량하이 3위가 있었는데 그들은 동몽골과 오이라트와 함께 당시 몽골의 중요한 구성원 중 하나였다. 삼위 우량하이는 동몽골의 세력이 강해지자 이들에게도 의부하여 명나라와 동몽골 사이에서 등거리외교를 행하였다. 이 때문에 여러 차례 명나라에게 토벌당하기도 하였다. 명나라 황제가 우량하이를 정발한 내용은 『조선왕조실록』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세종실록』 4년 11월 7일).

그 이외에 현재 몽골국훕수굴 아이막 일부 지역에 우량하이인들이 살고 있다. 이들은 근대 사서에 ‘아릭 우량하이(Ariγ uriyangqai)’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었다.

변천

17세기 이후 만주 지배기 때에는 알타이 및 탕누(Tangnu) 산맥 부근에 거주하던 튀르크계 부족들 또한 우량하이라는 명칭으로 불렸다. 이들 튀르크계 부족들은 17세기 때부터 우량하이라는 명칭으로 불리게 된 것으로 추측된다. 만주 지배기 때에는 탕누 우량하이(Tangnu uriyangqai) 5호쇼, 알타이 우량하이 3호쇼, 알탄누르(Altan naγur) 우량하이 1호쇼가 튀르크계 우량하이인으로 구성되었다. 그러나 이들은 스스로를 우량하이라고 부르지 않고 트바(Tyva)·투바(Tuva) 등으로 불러왔기 때문에 그들을 칭하는 우량하이라는 명칭은 만주인들이 오해하여 잘못 붙인 이름인 듯하다. 이들 튀르크계 우량하이의 후손들이 세운 나라가 오늘날 러시아연방 투바공화국이다.

아울러 조선시대에 북방 이민족을 오랑캐라고 불렀던 것도 우량하이라는 명칭에서 유래된 것이다. 조선에서는 여진족계 여러 부족을 오랑캐라고 불렀는데, 이것은 점차 ‘미개인’을 가리키는 통칭이 되었다. 실록에서도 오랑캐를 의미하는 용어로 올량합이 종종 나오는데, “올량합 지휘첨사(指揮僉事) 홀실탑아합(忽失塔阿哈) 등이 와서 토물(土物)을 바쳤다는 기록이 있다(『단종실록』 2년 1월 13일).

현재 스스로를 우량하이·우량한이라 부르는 사람들은 몽골국과 중국 내몽골에 대거 살고 있다. 또한 러시아연방 사하(Sakha)인들도 스스로 우량하 (Uryankha)라 일컫는다.

참고문헌

  • 『원조비사(元朝秘史)』
  • 『원사(元史)』
  • 라시드 앗 딘, 『집사』, 사계절, 2002.
  • 동북아역사재단 편, 『명사 외국전 역주(明史 外國傳 譯註)』, 동북아역사재단,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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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Ц.Цэрэндорж, 「On the name "Ger(e)sen(g)je jalayir qun(g)tayiji"」, 『Acta Historica』, Mongolian State University of Education , Vol. 6, 2005. (Ts.체렝도르지,「‘게레센제 잘라이르 홍타이지’라는 명칭에 대한 고찰」, 『Acta Historica』, 몽골국립교육대학교, 6권,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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