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봉(五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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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명대 중기의 밀무역상인 및 왜구지도자.

개설

오봉(五峯)은 왕직(王直)의 호이다. 중국의 일부 사서에는 왕직(汪直)이라고도 적혀있다. 본명은 왕정(王鋥)으로 중국 안휘성(安徽省) 흡현(歙縣) 출신이다. 휘왕(徽王), 노선주(老船主) 등으로 칭해지기도 했다. 처음에는 염상(鹽商)으로 종사했지만 후에 밀무역가가 되었다.

내용 및 특징

1540년경 명의 해금정책이 느슨해지자 광동(廣東)으로 가 반출 금지물품을 배에 싣고 남양 방면에서 밀무역을 행해 수년 만에 큰 부를 쌓았다고 한다. 밀무역에 종사한 초기에는 절강성 쌍서(雙嶼)에 본거지를 둔 밀무역의 거두 허동(許棟)·이광두(李光頭)의 배하로 활동하며 동남아시아와 일본 등으로 오가며 밀무역을 행했다. 1545년 일본 내항 시에는 박다(博多)의 상인과 교역하고 이들을 쌍서항으로 유도했다. 당시 허동은 막 동아시아로 진출하던 포르투갈인을 쌍서항으로 끌어들여 밀무역을 행하고 있었는데 여기에 일본 상인들도 참여하여 쌍서항은 중국인·일본인·동남아시아인·포르투갈인 등이 혼재하는 국제적 밀무역항이 되었다. 1540년 일본의 오도(五島)에 거점을 마련하고 1542년에는 송포융신(松浦隆信)의 적극적인 초치로 평호(平戸)에 거처를 두었다.

1548년 해금정책 강화에 나선 주환(朱紈)이 쌍서를 공격해 괴멸시켰다. 난을 피한 왕직은 남은 무리를 모아 자신의 집단을 조직하고 절강성 주산(舟山) 열도의 열항(烈港)를 본거로 삼아 밀무역 내지 왜구활동을 펼쳤다. 그는 스스로 휘왕이라고 칭하고 왜인을 지휘하며 그 위세를 떨쳐 가정대 왜구 최대의 두목으로 지칭되기에 이른다. 그런데 1553년 명군이 열항을 공격하자 왕직은 오도 혹은 평호로 본거지를 옮겼다. 이후 왕직은 일본에 머물며 부하들을 명에 보내 밀무역과 약탈활동을 벌였다. 아울러 일본의 영주들과도 우호적 관계를 구축해 이들에게 필요한 물품을 공급하는 등 안정적 기반을 마련했다. 평호의 송포씨, 오도의 우구(宇久)씨 외에 구주의 대영주 대우종린(大友宗麟)과도 접촉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1556년 절직총독(浙直總督)으로 부임한 호종헌(胡宗憲)은 왕직에게 무역 허가를 조건으로 명조에 투항할 것을 권하였다. 한편 이 무렵 척계광(戚繼光) 등의 활약으로 왜구에 대한 명군의 무력진압은 성과를 내고 있었다. 1557년 왕직은 호종헌의 제안을 받아들여 명으로 귀국했다. 그러나 명조 내부에서는 왕직에 대한 처치를 두고 의견이 나뉘었는데 처벌을 주장하는 의견이 강해 왕직은 결국 1559년 12월 처형되었다.

활동 사항

오봉(五峯)의 이름은 1556년(명종 11) 대마도에서 보낸 왜인 조구(調久)와의 문답에서 등장한다. 조구는 “중국 사람으로서 오봉이라 일컫는 자가 적왜(賊倭)를 거느리고 중국에 쳐들어오려고 한다.”고 조선에 전하고 있다. 아울러 오봉을 평호도(平戶島)에서 보았다면서 오봉은 3백여 명을 거느리고 큰 배 한 척을 타고 있었는데 늘 비단옷을 입고 다녔으며 그 무리가 대략 2천 명 정도라 하고 있다(『명종실록』 11년 4월 1일).

또한 조구는 1555년 을묘왜변에 대해 아파(阿波)·이예(伊豫)·찬기(讃岐)·토사(土沙)의 4주 사람들과 오행산(五幸山) 왜인들이 무리를 지어 노략질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오행산은 곧 오도로 을묘왜변이 오도와 관련 있다는 것은 뒤에도 거론되고 있다(『선조실록』 34년 5월 8일). 이와 관련해 을묘왜변 당시의 보고에는 왜인이 보낸 서계에서 사용하는 용어가 중원에서 사용하는 것이라는 점과 ‘가정(嘉靖)’이라는 연호를 사용한 점을 들며 금번의 왜구에 중국 사람이 있거나 중국에도 자주 왕래하는 자들일 것이라고 의심하는 부분이 있다(『명종실록』 10년 5월 19일). 위의 사실들을 통해 을묘왜변이 왕직 집단과 관련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임진왜란 전 풍신수길(豊臣秀吉)이 명을 공격할 것이라는 내용의 투서가 명에 전해졌는데 그 내용이 『선조수정실록』에 실려 있다. 그 내용 중에는 풍신수길이 일본에 남아 있던 왕직의 부하들에게 명의 실상을 묻는 부분이 있는데, 여기서는 ‘왕오봉(汪五峯)’으로 쓰고 있다(『선조수정실록』 24년 5월 1일).

참고문헌

  • 林仁川, 『明末淸初私人海上貿易』, 華東師範大學出版社, 1987.
  • 鄭樑生, 『明代倭寇』, 文史哲出版社, 2009.
  • 國史大辭典編集委員會, 『國史大辭典』, 吉川弘文館, 1999.
  • 荒野泰典 等編, 『地球的世界の成立』(日本の對外關係5), 吉川弘文館, 2013.
  • 윤성익, 「‘後期倭寇’로서의 乙卯倭變」, 『한일관계사연구』24, 한일관계사학회,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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