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관사력(五官司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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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청대의 관서인 흠천감의 정9품 관원.

개설

오관사력은 명나라와 청나라 때에 천체의 운행에 따라 역법(曆法)을 연구하거나, 길하고 흉한 것을 예언하는 천문(天文), 천체의 운행과 추위 그리고 더위의 변화의 순서를 통하여 책력을 만드는 역수(歷數), 구름의 모양과 빛 그리고 움직임 등을 보고 길흉을 점치는 점후(占候) 등을 맡아 보던 관서(官署)인 흠천감(欽天監)의 관원이었다.

담당 직무

오관사력은 『구당서(舊唐書)』「직관지(職官志)」 사천대(司天臺)조에 처음 보이는데, 정8품이고 총원은 5원이었다. 『문견잡기(聞見雜記)』에 의하면, 청나라 때는 사천대를 이은 흠천감의 관리였으며, 정9품이었다.

변천

1713년에는 목극등(穆克登)이 조선에 오면서 오관사력을 데리고 왔는데, 이는 그동안 한 번도 없던 일이었다(『숙종실록』 39년 5월 16일). 당시 목극등이 오관사력을 데려 온 이유는 『연려실기술(練藜室記述)』을 통하여 살필 수 있는데, 그 기록에 의하면 목극등이 데리고 온 오관사력은 조선에 와서 한양(漢陽)의 도수를 측정하였다고 한다. 오관사력이 측정한 한양의 북극(北極)의 도수는 37도 39분 15초였다.

당시 조선은 목극등이 데리고 온 오관사력에게 관상감(觀象監)의 관원 허원(許遠)을 시켜 천체의 운동을 관측하는 기구인 의기(儀器)와 계산하는 방식인 산법(算法)을 배우게 하였는데, 허원은 의주까지 따라가서 그 기술을 다 배웠다. 조선에서는 의기와 관련된 『의상지(儀象志)』와 『황적(黃赤)』·『정구(正球)』 등의 책과 산서(算書) 등에 관한 책을 인쇄하여 나누어 주고, 의기도 만들게 하였다. 이때 사력이 조선에 없는 서책과 기계를 청에 돌아가면 청나라 조정에 아뢰어 주겠다는 말을 하기도 하였다(『숙종실록』 39년 7월 30일). 이에 조선에서는 1715년에 허원을 청 사행단에 동행시켜 북경에 가게 하고, 오관사력을 만나 『역법보유방서(曆法補遺方書)』와 『추산기계(推算器械)』 등의 서적을 얻어 오게 하는 임무를 맡겼다. 사력을 만난 허원은 기존에 가져오려던 서적 외에 『일식보유(日食補遺)』·『교식증보(交食證補)』·『역초병지(曆草騈枝)』 등 도합 9책과 측산기계(測算器械) 6종을 더 얻어 오기도 하였다(『숙종실록』 41년 4월 18일).

참고문헌

  • 『구당서(舊唐書)』
  • 『문견잡기(聞見雜記)』
  • 『연려실기술(練藜室記述)』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