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부(寧越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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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영월 지방을 다스리던 관아. 조선시대 영월 지방을 다스리던 수령과 6방 관속들이 행정 실무를 보던 행정기구.

개설

고려시대에 영월 지방은 현으로 인근의 주현에 귀속된 속현(屬縣)이었다가 주현으로 승격되었고, 고려말에 군으로 승격되었다. 조선시대에는 군이었다가 조선후기에 노산군이 단종으로 복위되면서 부로 승격되었다.

설립 경위 및 목적

고구려에서는 내생군(奈生郡)이었다. 신라 때 내성군(奈城郡)으로 고쳤다.

고려 940년(고려 태조 23)에 영월(寧越)로 명호를 고쳐 원주의 속현이 되었다. 995년(고려 성종 14)에 10도제에서 삭방도(朔方道)에 귀속되었으며, 1018년(고려 현종 9)에 원주의 속현이 되었다. 고려말의 도 단위 편제의 개편에 따라 1178년(명종 8)에는 동주도(東州道), 1263년(고려 원종 4)에는 교주도(交州道)에 귀속되었다. 1372년(고려 공민왕 21)에 이 지방 출신의 환자(宦者) 연달마실리(延達麻實里)가 명(明)나라에 있으면서 국가에 공을 세웠다고 하여 군으로 승격되었다. 1388년(고려 우왕 14)에 교주강릉도(交州江陵道)에 귀속되었다.

조선 1395년(태조 4)에 강원도에 귀속되었다(『태조실록』 4년 6월 13일). 1455년(세조 1)에 군익도(軍翼道) 체제에 따라 원주도(原州道)를 설치하고, 원주와 횡성은 중익(中翼)으로, 영월군은 좌익(左翼)으로 편제하였다(『세조실록』 1년 9월 11일). 1457년(세조 3)에 군익도 즉 3익(三翼) 체제를 폐지하고, 거진(巨鎭)을 설치하는 진관(鎭管) 체제에서 영월군은 원주진에 귀속되었다(『세조실록』 3년 10월 20일). 1698년(숙종 24)에 노산군을 단종으로 추숭하고, 장릉으로 천릉함에 따라 이듬해에 영월군은 부로 승격되었다(『숙종실록』 25년 2월 10일).

조직 및 역할

조선초기에 군수(郡守)와 훈도(訓導) 각 1인을 두었다. 군수는 4품의 음직(蔭職)이었으나, 부사는 정3품의 문반직(文班職)이었다. 수령 예하의 자문기구였던 향청(鄕廳)에는 좌수(座首) 1인과 별감(別監) 2인을 두었다. 6방(六房) 관속으로 군관(軍官) 30인, 아전(衙前) 15인, 지인(知印) 6인을 두었다. 그리고 사령(使令) 5명, 군뢰(軍牢) 4명, 관노(官奴) 7명, 관비(官婢) 6명을 두었다. 6방 관속은 읍치(邑治)에 배치된 객사(客舍), 아사(衙舍), 향청(鄕廳), 군기청(軍器廳), 훈련청(訓練廳) 등에 배속되었다. 이들 중 호장(戶長)을 비롯한 상층부를 구성하여 향리(鄕吏)로 불리는 자들이 행정실무의 주도세력이었다.

변천

1895년(고종 32)에 8도제를 폐지하고 23부제를 시행하면서 강원도는 강릉부와 춘천부로 구분되었다. 아울러 군현제가 폐지되고 각 고을은 군으로 단일화되었다. 이때 영월부는 충주부 산하의 군으로 편성되었다. 1896년(고종 33)에 23부제를 폐지하고 13도제를 시행하면서 강릉부와 춘천부는 강원도로 편제되었고, 이때 영월군은 다시 강원도로 귀속되었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경국대전(經國大典)』
  • 『관동읍지(關東邑誌)』
  • 『관동지(關東誌)』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여지도서(輿地圖書)』
  • 강원도, 『강원도사』11, 강원도사 편찬위원회, 2015.
  • 강원도·영월군, 『영월군의 역사와 문화유적』, 한림대학교박물관, 19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