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도교(永渡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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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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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영도교 |
한글표제 | 영도교 |
한자표제 | 永渡橋 |
관련어 | 종로(鐘路), 창덕궁(昌德宮), 행행(幸行), 흥인문(興仁門), 관왕묘(關王廟), 동교(東郊) |
분야 | 경제/교통/육운 |
유형 | 지명 |
지역 | 대한민국 |
시대 | 조선 |
집필자 | 이왕무 |
관할 지역 | 동교(東郊)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영도교(永渡橋)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순조실록』 33년 4월 19일, 『고종실록』 23년 1월 27일, 『고종실록』 16년 11월 16일 |
종로대로에서 흥인문 인근의 오간수문을 지나 동교 지역의 관왕묘 아래로 흐르는 청계천에 놓인 다리.
개설
영도교(永渡橋)는 도성에서 흥인문(興仁門) 외부로 흐르는 청계천에 있던 다리이다. 청계천의 원활한 흐름과 도성 내 위생을 위해 준천(濬川)할 때 작업하는 범위를 알 수 있는 기준이었다. 영조대에 도성 내 청계천을 준천하면서 도성 외부에서는 영도교까지 하였다(『순조실록』 33년 4월 19일). 영조는 준천을 실시한 뒤 영도교의 돌에 땅을 파내는 한도를 새기고 ‘경진지평(庚辰地平)’ 네 글자를 새겨 뒷날에 개천을 쳐내어 물을 통하게 하는 기준을 표시했다(『고종실록』 23년 1월 27일).
명칭 유래
단종이 영월로 유배 갈 때 정순왕후송씨와 이별한 곳이라서 유래한 이름이라고도 하나, 정확히는 알 수 없다.
위치 비정
청계천이 오간수문(五間水門)을 지나 도성 외부로 흘러나가서 관왕묘 아래쪽에 이르던 곳에 있었다.
관련 기록
1879년(고종 16)에 한양 도성의 준천은 무위소(武衛所)에서 각 군영과 분담하여 관리하였다. 이에 따라 무위소는 송기교(松杞橋)에서 광통교(廣通橋), 용호영(龍虎營)은 광통교에서 수표교(水標橋), 훈련도감은 수표교에서 효경교(孝經橋), 금위영(禁衛營)은 효경교에서 오교(午橋), 어영청은 오교에서 오간수구(五間水口), 오간수구 밖에서부터 영도교까지는 훈련도감·금위영·어영청에서 담당하였다(『고종실록』 16년 11월 16일).
참고문헌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비변사등록(備邊司謄錄)』
- 『경도잡지(京都雜誌)』
- 『여지도서(輿地圖書)』
- 『한경지략(漢京識略)』
- 『한양가(漢陽歌)』
- 나각순, 『서울의 성곽』,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2004.
-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서울의 하천』,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2000.
-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서울지명사전』,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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