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성황후왕비세보(列聖皇后王妃世譜)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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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열성황후왕비세보 |
한글표제 | 열성황후왕비세보 |
한자표제 | 列聖皇后王妃世譜 |
분야 | 족보 |
유형 | 한문 |
지역 | 한국 |
시대 | 조선 |
왕대 | 숙종~일제시대 |
집필자 | 성낙수 |
저편자 | 종부시(宗簿寺: 조선(朝鮮)) 편 |
간행처 | |
간행년일 | 1681(최초), 1933(마지막) |
권책수 | 79책(장서각), 35책(규장각) |
사용활자 | 필사본 |
표제 | 열성황후왕비세보(列聖皇后王妃世譜) |
소장처 | 장서각, 규장각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열성황후왕비세보(列聖皇后王妃世譜) |
이 책은 조선조 역대 왕비의 부모로부터 시조까지 직계의 세계(世系)를 수록한 보첩이다.
개설
이 책은 목조비(穆祖妃) 효공왕후(孝恭王后)부터 고종황제후(高宗皇帝后) 명성황후(明成皇后)까지 조선의 왕후 및 대한제국의 황후 세계(世系)를 정리하여, 편찬한 세보(世譜)다. 목조비 효공왕후부터 고종황제후 명성황후까지 각 왕후와 황후의 직계 조상을 수록하였는데, 빠진 왕후도 있고, 기록이 누락된 부분도 많다.
이 책은 조선의 왕비 및 대한제국의 황후를 비롯하여, 왕실·황실 외척의 친족 구성을 알 수 있다. 또한 조선과 대한제국의 정치 지배층에 대한 연구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왕의 인척을 기록한 왕실 족보는 왕비 가문을 관리하던 곳이 돈녕부(敦寧府)였기 때문에 『돈녕보첩(敦寧譜牒)』이라고 하였다. 『돈녕보첩』도 선원록류와 마찬가지로 3년마다 대상자들을 조사하여 새로 작성하였는데, 왕비의 친정 9대까지 기록하였다.
편찬/발간 경위
조선왕실 족보는 선원록류(璿源錄類)와 비선원록류(非璿源錄類)로 구별할 수 있다. ‘선원록류’는 전주 이씨를 중심으로 한 조선 왕실의 족보류이다. 『종친록(宗親錄)』, 『유보록(類附錄)』, 『선원록(璿源錄)』, 『가현록(加現錄)』, 『예원계보기략(璿源系譜記略)』, 『선원속보(璿源續譜)』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이에 비해 ‘비선원록류’는 ‘선원록류’를 제외한 왕실 족보라 할 수 있다. 『돈녕보첩』, 『왕비세보(王妃世譜)』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왕실 족보의 작성은 왕실의 사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도 없지는 않지만, 대부분은 국가적 사업으로 추진되었다. 그것의 작성에는 왕실 관련 인물뿐만 아니라, 당대 권력집단의 핵심부에 있는 인물들이 참여하였고, 관리와 보관은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과 같은 수준에서 공식적으로 이루어졌다. 이렇듯이 선원록은 국가의 족보로 인식되었던 것이다.
『돈녕보첩』 이외에도 왕비 가문을 기록한 족보에는 『왕비세보(王妃世譜)』가 있었다. 『왕비세보』는 1681년(숙종 7) 이전에 이미 작성된 전례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숙종 7년 당시에 전해지지 않아서, 선원록(璿源錄) 및 어첩(御牒) 등을 작성하면서 참고자료로 이용하기 위하여 작성하였다. 일제강점기인 1933년에 이르기까지 여러 번에 걸쳐 수정되었다.
『왕비세보』는 일반 족보류와 달리 각 왕비의 부모부터 시작하여, 조부모·증조부모 등을 거쳐 시조에 이르는 직계를 수록하였다. 왕비의 부모에 관해서는 묘비명(墓碑銘)이나 신도비문(神道碑文) 등을 첨부하고, 나머지 인물들은 성명, 직함, 생졸년, 과거 합격 연도, 무덤 위치 등 중요한 정보만 수록하였다. 이것은 왕비 가문의 후손들을 파악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 집안의 내력을 확인하기 위한 참고 자료로 이용되었다.
서지 사항
5권 5책으로 구성되어 있고, 필사본(규장각본)이다. 크기는 35.4×24.3cm이며, 장서각,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이 책은 1681년(숙종 7) 3책을 처음 작성하기 시작해, 일제강점기인 1933년까지 여러 차례 수정·보완되었다. 이는 『열성황후왕비세보(列聖皇后王妃世譜)』가 각 왕비의 부모로부터 시작하여, 조부모·증조부모·고조부모 등을 거쳐 시조에까지 이르는 직계를 수록했으므로, 새로운 왕비가 책봉되거나, 왕비 자신에게 휘호(徽號)가 가상(加上)되거나, 아니면 세보(世譜) 중에 누락된 부분이 발견될 경우에는 수정·보완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세보들은 1681년(숙종 7)의 세보를 저본으로 하고, 그 이후에 작성되는 세보에는 수정 보완한 내용이 첨가되는 형태로 되어 있다.
『왕비세보』는 1681년 이전에 이미 한언(韓堰)과 민반(閔泮) 등이 작성한 전례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숙종 7년 당시에 전해지지 않아서 선원록(璿源錄) 및 어첩(御牒) 등을 작성하면서, 참고자료로 이용하기 위해 작성했다. 최후로 작성된 것은 일제강점기인 1933년 본으로 이는 당시의 영왕비(英王妃) 이방자(李方子) 여사를 수록하기 위해서였다.
체제는 범례에 나타난 대로 왕비의 부모에 관해서는 비지(碑誌)를 첨부하고, 나머지 인물들은 성명, 직함, 생졸 연도, 과거 합격 연도, 장지 등만 수록했다. 이에 비해, 순조·헌종·철종 및 고종 연간에 작성된 세보에는 범례와는 관계없이 왕비의 부모뿐만 아니라, 조·증조부·고조부 및 그 이상의 인물들에 관한 비지도 수록했다.
권1은 목조대왕비 효공왕후와 정종대왕비 정안왕후(定安王后), 권2는 성종대왕비 공혜왕후(恭惠王后)와 인조비 인열왕후(仁烈王后) 및 장렬왕후(莊烈王后), 권3은 효종비 인선왕후(仁宣王后), 권4는 영조비 정성왕후(貞聖王后)부터 철종비 철인왕후(哲仁王后)까지의 세계를 수록하였는데, 진종비 효순왕후(孝純王后)의 세계가 누락되어 있다. 권5는 고종황제후 명성황후의 세계를 수록하였다. 헌종의 계비 효종왕후(孝定王后, 1831~1903)에게 1900년(광무 4)에 올린 ‘강완(康綏)’이라는 존호를 포함하여, ‘태후폐하(太后陛下)’라고 기재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1900년 인조와 인조비 및 계비, 효종과 효종비, 헌종의 계비 등에게 존호를 올린 후 편찬한 것으로 추정된다. 세계의 기재 방식을 살펴보면, 왕후 및 황후의 부모, 조부모, 증조부모의 순서로 기술하였고, 본관과 이름을 비롯하여, 관직(官職)·봉작(封爵)·시호(諡號)·생몰년(生沒年)·등제년(登第年)·향년(享年)·묘지(墓誌) 등을 기재하였다. 부모의 묘지명(墓誌銘)·묘표음기(墓表陰記)·신도비명(神道碑銘)·가전(家傳)·가장(家狀) 등도 첨부하였다.
의의와 평가
이 책은 각 왕비의 부모부터 시작하여, 조부모·증조부모 등을 거쳐 시조에 이르는 직계를 수록하고, 왕비의 부모에 관해서는 묘비명이나 신도비문 등을 첨부하였으며. 나머지 인물들은 성명, 직함, 생졸년, 과거 합격 연도, 무덤 위치 등 중요한 정보만 수록하였으므로, 그 집안의 내력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다.
참고문헌
- 김용숙, 『朝鮮朝宮中風俗硏究』, 일지사, 1987.
- 박영규, 『조선의 왕실과 외척』, 김영사, 2003.
- 변원림, 『조선의 왕후』, 일지사, 2006.
- 신명호, 『조선공주실록』, 역사의 아침, 2009.
- 신병주, 『66세의 영조 15세 신부를 맞이하다』, 효형출판, 2001.
- 윤정란, 『조선왕비 오백년사』, 이가출판사, 2008.
- 임중웅, 『조선왕비열전』, 선영사, 2008.
- 최선경, 『왕을 낳은 후궁들』, 김영사,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