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분(燕分)
주요 정보 | |
---|---|
대표표제 | 연분 |
한글표제 | 연분 |
한자표제 | 燕分 |
관련어 | 십이국분야(十二國分野) |
분야 | 문화/과학/천문 |
유형 | 자연(현상) |
집필자 | 김일권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연분(燕分)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선조실록』 25년 4월 28일, 『선조실록』 26년 5월 5일 |
고천문학에서, 하늘을 십이국(十二國) 분야(分野)로 나눌 때 연(燕)나라 구역에 속한다고 설정한 가상의 공간.
개설
십이국 분야설은, 고대 춘추시대 대표적인 열두 제후국을 기준으로 삼되, 대략적인 그들의 방위에 따라 하늘 공간도 12개로 구분한 천상분야론이다. 이 천상분야론은 지상의 중국을 아홉 구역으로 나눈 구주론(九州論)을 천구(天球) 공간으로 확장한 것이기도 하다. 십이국 분야에 편입된 나라는 정(鄭)나라, 송(宋)나라, 연나라, 오월국(吳越國), 제(齊)나라, 위(衛)나라, 노(魯)나라, 조(趙)나라, 진(晉)나라, 진(秦)나라, 주(周)나라, 초(楚)나라이다. 이 가운데 연분(燕分)은 바로 연나라의 분야를 일컬으며, 방위로는 동북방에 해당한다. 이 때문에 조선시대에 와서는 이 연분을 조선의 분야를 지칭하는 것으로 동일시하는 이론이 확산되었다.
내용 및 특징
하늘을 일정 구역으로 나누는 분야설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대표적인 것으로 구주설(九州說) 내지 구야설(九野說)이 있고, 이를 십이지(十二支)에 연결한 십이국 분야설이 있으며, 28수(宿) 별자리에 대응시킨 28수 분야설도 있다.
분야설의 기초가 되었던 『여씨춘추(呂氏春秋)』의 구주설을 보면, 주나라의 중심지인 예주(豫州)에서 시작하여 기주(冀州), 연주(兗州), 청주(靑州), 서주(徐州), 양주(楊州), 형주(荊州), 옹주(雍州), 유주(幽州)를 구주로 삼았다. 이것은 대략 중앙과 팔방위로 구분한 구궁(九宮) 관점이다. 이를 그대로 천구로 연장하여 구야설을 만들었는데, 『회남자(淮南子)』에서는 구궁에 따라 중앙인 균천(鈞天), 동쪽인 창천(蒼天), 동북쪽인 변천(變天), 북쪽인 현천(玄天), 서북쪽인 유천(幽天), 서쪽인 호천(顥天), 서남쪽인 주천(朱天), 남쪽인 염천(炎天), 동남쪽인 양천(陽天)의 구천설(九天說)을 제시하였다.
이것이 춘추시대 열두 제후국으로 확장되어 십이국 분야설이 되었다. 조선의 대표적인 천문도인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에도 십이국 분야설이 그대로 적용되어 있다. 나라로는 십이국의 크기가 일정치 않지만, 천상 분야로 설정될 때는 적도의 360° 주천(周天)을 12등분한 관념이어서 성차론(星次論)에 적용되는 십이차(十二次)와 십이궁(十二宮), 십이진(十二辰)에 대응하도록 개념화되었다. 매 분야는 30° 내지 31° 폭으로 균등화되어 있다.
『조선왕조실록』에 나오는 연분 관련 기록으로는, 먼저 선조 때의 기록이 있다. 임진왜란으로 백성이 두려워하자 왕은 목성이 머무는 나라를 치는 자는 반드시 그 재앙을 받는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이제 세성이 우리의 연분에 머물고 있으니 왜적은 반드시 자멸할 것이라고 하여 민심을 안심시키려 하였다(『선조실록』 25년 4월 28일).
윤근수(尹根壽) 가 안주(安州)에서 오자 선조는 즉시 윤근수를 불러들여 면대하였는데 여기서도 선조의 점성적 인식을 볼 수 있다. 윤근수가 중국 조정에서 보낸 서찰을 가지고 와서, 제독이 28일에는 군사를 진격시킨다는 보고를 하였다. 이를 듣고, 왕은 김상(金相)이란 술사(術士)가 지난날에 문첩(文帖)에 쓴 것을 본 적이 있다고 하면서, 일본의 침략과 퇴각이 이미 천변 현상으로 예고되어 있었다고 말하였다. 곧 중원(中原)에 지난 1577년(선조 10) 혜성이 하늘을 가로질렀는데, 혜성은 바로 우리나라에서 치우기(蚩尤旗)라고 하는 것으로, 김상이 말하기를 “이 혜성이 기성(箕星)의 꼬리에서 나와 두성(斗星)과 우성(牛星)에 닿았다. 기성은 연(燕)나라의 분야에 해당하고, 두성과 우성은 월(越)나라의 분야에 해당하니, 10년 후에 조선이 병화(兵禍)를 받을 것이다.” 하고 예언했다고 하였다. 또 김상이 최우(崔遇)에게 “지금 천상(天象)을 보니 4월이면 왜적이 물러갈 것”이라 말했다고 하였는데, 실제로 4월에 왜적이 과연 물러갔다고 하면서 김상을 기이하게 여긴다고 하였다(『선조실록』 26년 5월 5일). 대략 10년 전에 혜성이 하늘을 가로질러 지나갔고 그 경로가 조선에 해당하는 연나라 분야에서 꼬리가 나왔으니 조선이 병란을 받을 것이라는 하늘의 예고였다는 것이다. 이처럼 선조는 다른 왕에 비해 천문의 점성적 해석을 크게 믿는 경향을 보였다.
참고문헌
- 『사기(史記)』 「천관서(天官書)」
- 『한서(漢書)』 「예문지(藝文志)」
- 『한서(漢書)』 「천문지(天文志)」
- 『여씨춘추(呂氏春秋)』
- 『회남자(淮南子)』
- 『천문류초(天文類抄)』
-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 김일권, 『(동양 천문사상) 하늘의 역사』, 예문서원, 2007.
- 김일권, 『고구려 별자리와 신화: 고구려 하늘에 새긴 천공의 유토피아』, 사계절, 2008.
- 김일권, 『우리 역사의 하늘과 별자리: 고대부터 조선까지 한국 별자리와 천문 문화사』, 고즈윈,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