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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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자전주기 혹은 달의 삭망 주기를 바탕으로 1년 혹은 1개월의 길이를 정하는 것.

개설

1년의 길이를 정하고 월과 일을 결정하는 것이 이른바 역(曆)이다. 1년의 길이나 1개월의 길이가 정확하게 정해져 있지 않았던 시대에는 달력과 실제의 계절이 서서히 어긋나게 되어 달력을 수정해야만 했다. 그로 인해 율리우스력을 비롯하여, 유럽이나 중국 등지에서는 여러 가지 달력이 만들어졌다. 근대 이전에는 시간을 기록한 달력을 국가가 독점하고 있었다. 달력은 시간의 흐름만 나열한 것이 아니라, 농사 지침, 좋은 날, 나쁜 날 등 일상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해주었다.

내용 및 특징

전근대 한국과 중국은 시간을 기록해놓은 역을 국가가 독점하고 있었는데, 국가 통치 질서와 관련 지어 매우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역은 시간을 정하는 법인 역법(曆法)과 이를 알려주는 역서(曆書)로 구분된다.

우리의 전통 역은 지구의 자전주기를 1일, 공전주기를 1년이라 하고, 달의 삭망 주기를 음력의 한 달이라 정했다. 그러나 양력의 한 달 주기는 천체 운동의 주기와는 관계없이, 편의상 1년을 12로 균등하게 나누었을 뿐이다. ‘역’에서의 문제는 1년, 1월, 1일의 시간 단위가 정배수로 되어 있지 않은 데 있었다. 이 때문에 여러 가지 역법이 고안되었고 고치기를 거듭하여 오늘날에 이르렀다.

한국을 비롯한 전통시대 동아시아 국가들은 중국에서 반포한 역서를 받아 사용하거나 중국 역법에 따른 역서를 사용하였다(『효종실록』 6년 1월 16일). 이는 시간이 곧 정치적 권위의 상징이었음을 말해준다. 중국에서 역이 국가적인 차원에서 사용된 것은 기원전 221년(진 시황제 26)부터였다. 강력한 중앙집권 체재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날짜의 통일이 절대적으로 필요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중국력이 사용된 것은 삼국시대부터였다. 고구려가 당의 무인력, 백제는 송의 원가력, 신라는 당의 인덕력을 사용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통일신라 때는 당의 선명력을 도입하여 사용하였다. 선명력은 고려 충선왕대에 원의 수시력(授時曆)으로 바꿀 때까지 무려 500년 가까이 사용되었다.

선명력은 9세기경 발해에 의해 일본에 전해졌으며 일본은 17세기 후반까지 800년간 선명력을 사용했다. 이후 일본은 수시력을 19세기 말까지 사용했다. 17세기에 조선이 수시력 다음 단계의 시헌력(時憲曆)을 수용하기 위해 수십 년간 노력한 것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오늘날 사용하고 있는 국제적 표준 시간은 서양의 주도로 이루어진 것이며, 이러한 서양 주도의 시간 통일은 근대 이후 서양의 우위를 확인해주는 또 하나의 지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시간의 통일은 과학적 우위와 함께 정치적 우위라는 함수 위에 존재하는 이중성을 지니고 있으며, 이러한 측면은 전통시대 한국과 중국· 일본의 시간 체제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문제이다.

동아시아에서 중국은 중국적 시간 체제를 형성하였으며, 한국은 중국의 시간 체제의 가장 큰 영향을 받은 국가이다. 물론, 일본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중국 달력의 영향을 받았지만, 서양력이 들어오기 전까지 가장 과학적으로 우수하다고 평가받는 시헌력을 사용하지 못하였다. 다시 말해 일본은 시헌력 이전의 역법인 수시력을 태양력으로 개력할 때까지 사용하였는데, 17세기에 조선이 시헌력을 수용하기 위해 수십 년간 노력한 것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시간의 통일은 도량형이나, 문자의 통일처럼 중앙집권 국가의 성립과 연결되는 문제이다. 중앙집권 국가가 발달한 한국과 중국이 일찍부터 통일된 달력을 사용한 것에 비해 일본은 19세기 이전까지 지방마다 각기 다른 날짜를 사용하였다. 일본의 경우, 19세기에 이르러 중앙집권이 강화되면서 지방마다 각기 서로 다른 날짜를 통일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반면, 한국은 조선시대의 경우 중국과 밀접하게 정치·외교적으로 시간 체제를 공유하면서 한편으로 천문학과 역법을 발전시켜 나갔다.

17세기 이후 중국과 함께 시헌력을 사용했던 한국은 역서 체제 또한 동일한 체제를 견지하였으나, 일본은 한·중과는 다른 역서 체제를 지니고 있었다. 동시기 일본과 달리 17세기 이후에 한국과 중국에서 발행한 역서는 천문학적 수준뿐만 아니라, 역서 체제에서도 이전과는 달리 상당히 진보된 것이었다. 즉 조선시대의 역서는 정치적으로는 중국적 시간 체제 속의 산물이지만, 과학 및 문화적으로는 매우 우수한 것이었다.

한국의 전통 역에는 시간에 대한 두 개념, 즉 순환적 개념과 직선적 개념이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 즉, 어떤 일을 성공적으로 할 수 있는 상서로운 시기를 택하고 싶은 소망과 계절과 해와 세대가 직선적으로 지나고 있는 자연력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간지로 날짜를 헤아리는 것은 시간에 대한 순환적 개념을 강요했고 순서가 정해져 있는 육십갑자는 다른 계산법을 능가했다. 순환적 개념과 대립하는 직선적 개념에 따라 군주의 치세가 시작된 해부터 햇수를 매겼는데, 따라서 서양과 달리 동양 3국은 연호(年號)를 사용하였으며, 연호에 치세의 햇수를 사용하였다. 연호에 사용되는 해의 의미는 계속적으로 순환하고 지속하는 시간이 아닌, 특정한 순간이나 때를 의미한다. 이처럼 시간이란 정치·사회적 필요에 따라 조작할 수도 있는 것이다.

한국과 일본은 어떤 일을 하기에 좋은 때와 나쁜 때가 있다는 의식이 강한 중국의 역서 체계를 많이 받아들였다. 길일과 흉일이 있다는 의식은 시간이 주기적으로 측정된다는 생각에 바탕을 두고 있다. 전통시대 역서는 삭망일에 따른 역일의 순환 못지않게 일진(日辰)의 순환 또한 중요시하였다. 이러한 순환적 시스템은 조선시대 역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조선시대 역서는 어떤 일을 하는 데 좋거나 나쁘다고 하는 길흉일을 예측하는 것 중심으로 짜여 있다. 이러한 길흉일과 달력과의 관계는 동서양 달력에 모두 적용되는 것으로 전통시대 달력의 의미는 날짜를 보는 기능만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역년(曆年)과 역월(曆月), 역일(曆日)을 간지로 나타낸 것이 세차(歲次), 월건(月建), 일진이다. 마찬가지로 시(時)에 대해서도 간지를 배당하였는데, 이와 같은 시간인식은 길흉일의 예측과 함께 순환론적 자연인식을 가지게 하였다. 인간의 길흉이라는 것이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의 순환처럼 반복되는 현상을 가졌다고 본 것이다.

전통력에는 각(角), 항(亢), 저(氐) 등 28개의 별자리를 모든 날짜의 밑에 적어 넣었다. 28별자리는 원래 천문학적 의미를 지닌 것이지만, 역서에서는 기계적으로 매일 한 수(宿)씩 순차로 배당하여 쓰여졌다. 사실, 28수라는 별자리는 태양이나 달의 운행에 관계되는 것도 아니며, 단순히 관념상 인간이 정해놓은 기준이라고 볼 수 있는데 고대에는 점성술이나 그 밖의 미신에 이용되는 경우가 있었다.

조선시대에 와서도 이러한 28수에 대한 인습은 없어지지 않고 엄연히 역서에 기재되어 행성의 상대적 위치에 따라 좋거나 나쁜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믿었음을 알 수 있다. 특정한 날 어떤 행성의 자리가 좋지 않으면, 그 행성이 관장하는 활동을 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한 것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이러한 길일과 흉일의 개념은 생명력이 강해서 완전한 태양력 체제로 바뀔 때까지 변함없이 역서의 중심 체계로 자리 잡았으며, 시간과 점성을 결합한 전통 역의 인식 체계를 형성하였다.

변천

옛사람들이 ‘시간-역’을 중요하게 여긴 이유는 근대사회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약속과 노동시간 때문만은 아니었다. 종교적인 이유이든 세속적인 이유에서든 좋은 날이나 시간을 선택하는 것은 국가 통치자나 관리들뿐만 아니라 농부와 상인들에게도 대단히 중요한 문제였다. 예컨대 제사를 올리거나 중요한 사업을 시작하는 데 좋은 날은 언제인가 하는 문제에 선택의 지침을 얻기 위해 그들은 초자연적인 자료에 도움을 청했고, 그것이 역으로 정착화된 것이다.

동아시아 사회에서 시간과 그 시간을 알려주는 일은 국가적 차원에서 이루어졌다. 시간의 관리가 권력화된 것이다. 예를 들어 삼국시대에는 ‘일자(日者)’ 혹은 ‘일관(日官)’이라 불리는 천문 관리가 있었는데 이들의 업무는 해시계를 관리하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시간을 관리한 것이다. 삼국시대부터 역대 왕들은 시간을 독점적으로 관리하고 시보를 통해 백성들의 생활을 통제했다.

따라서 표준 시간을 제정하는 일은 중앙집권의 통일왕조에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정확한 표준시계는 예외 없이 왕이 정무를 보는 편전 가까이에 있었다. 예를 들어 물시계인 자격루가 있던 세종조의 경복궁 보루각은 경회루 남쪽으로 왕이 정무를 보던 사정전 서쪽 가까이에 있었다. 광해군 때의 창경궁 보루각은 문정전의 문정문 밖 가까이에 있었다. 자동시보장치인 선기옥형(璇璣玉衡)이 두어졌던 숙종조의 창덕궁 제정각은 희정당 남쪽 행랑에 있었으며 후에 북쪽 계단에는 해시계를 두고 안에는 물시계를 두었다.

참고문헌

  • 『제가역상집(諸家曆象集)』
  • 『국조역상고(國朝曆象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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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