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산학관(曆算學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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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세종대에 역산소(曆算所)에서 역법(曆法)을 공부하던 생도.

개설

역산학관(曆算學官)은 1448년(세종 30) 역산 전문가의 양성기관인 역산소(曆算所)에서 역산 공부를 했던 생도(生徒)를 말한다. 세종은 역산소에 선생 격인 역산훈도(曆算訓導) 3인과 학생 격인 역산학관 10인을 두고 이들이 역법을 공부할 수 있도록 했는데, 세조대에는 서운관(書雲觀)의 업무도 겸임하였다. 그러나 점차 역산학관을 지원하는 자가 없어지면서 유명무실화되었다.

내용 및 특징

1448년에 세종은 조선의 역법이 후세에 전하지 못할까 염려하여, 역산소를 설치하였다(『세조실록』 9년 3월 2일). 역산소에는 선생 격인 역산훈도 3인과 학생격인 역산학관 10인을 두고 이들이 항상 산서(算書)와 역경(曆經)을 익히게 했다. 역산학관은 젊은 의관자제(衣冠子弟) 중에 총명한 자 10인을 가려서 충원하였다. 역산훈도와 역산학관들은 열흘마다 간단한 시험을 치르고 매일매일 수업 태도를 장부에 적어 부지런한 자를 권장하고 게으른 자를 징계하여 학업을 연마하도록 했다(『세조실록』 6년 6월 16일).

변천

1460년(세조 6)에 역산소는 역산 공부 외에도 서운관의 업무를 겸임하였다. 서운관의 역법을 맡은 관리들이 해마다 태양(太陽)·태음(太陰)·오성(五星)·사여(四餘)·현행력(見行曆)·교식(交食) 등을 추산(推算)하는데, 서운관에 결원이 생기면, 역산훈도와 역산학관 중에서 품등(品等)에 따라 고하를 헤아리지 아니하고 체아직(遞兒職)으로 서용하였다. 그러나 세조대에 와서 역산 공부가 부실해지고 1466년(세조 12) 관제개정 때 서운관을 관상감으로 바꾸면서 역산소의 폐치와 함께 역산학관도 없어진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 『제가역상집(諸家曆象集)』
  • 『국조역상고(國朝曆象考)』
  • 나일성, 『한국천문학사』, 서울대학교출판부,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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