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해두창집요(諺解痘瘡集要)
주요 정보 | |
---|---|
대표표제 | 언해두창집요 |
한글표제 | 언해두창집요 |
한자표제 | 諺解痘瘡集要 |
분야 | 의학/국어학 |
유형 | 문헌 |
지역 | 한국 |
시대 | 조선 |
왕대 | 선조(宣祖) |
집필자 | 성낙수 |
저편자 | 허준(許浚) |
간행처 | |
간행년일 | 1608년(선조 41) |
권책수 | 2권 2책 |
소장처 |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장서각, 연세대, 이화여대, 산기문고, 성암문고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언해두창집요(諺解痘瘡集要)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선조실록』 39년 5월 14일, 『광해군일기』 1년 2월 18일, 『세조실록』 8년 2월 14일, 『성종실록』 3년 3월 14일 |
조선 중기 선조(宣祖)의 명을 받은 허준(許浚)이 천연두와 관련하여 편찬한 의학 서적.
개설
『언해두창집요(諺解痘瘡集要)』는 1601년(선조 34) 당시 어의(御醫)이던 허준(許浚)이 선조의 명을 받아 천연두의 치료문을 정리한 것을 1608년(선조 41) 내의원에서 간행한 의학 서적이다. 상하로 구분되어 있으며, 상권에는 천연두의 원인과 예방법 및 그 증상, 이에 대한 해독법이 실려 있다. 하권에는 천연두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증상에 대하여 서술하고 있으며, 음식·금기(禁忌)·욕법(浴法)·양법(穰法)·두후잡병(痘后雜病)·잉부두창(孕婦痘瘡)·반진(斑疹)에 대하여 기술하고 있다.
편찬/발간 경위
저자인 허준이 쓴 발문(跋文)에 따르면 1590년(선조 23) 겨울 왕자가 천연두에 걸려 허준이 시약하여 치유하였고, 1601년(선조 34)에도 왕자와 왕녀가 천연두에 걸려 다시 약을 사용하여 치유하였다고 한다. 이에 선조는 허준에게 『태산집(胎産集)』·『창진집(瘡疹集)』·『구급방(救急方)』을 참고하여 언해를 하게 하였다. 이듬해인 1602년(선조 35) 편찬을 마쳤으며, 1608년(선조 41) 내의원에서 간행하였다.
이 책을 간행한 ‘내의원’은 조선시대 임금의 약을 짓던 곳으로, 1608년(선조 41)부터 1615년(광해군 7) 사이에는 내의원 안에 별도로 국(局)을 설치하여 허준을 비롯한 의관들이 의서를 편찬ㆍ교정ㆍ감수하여 목활자로 간행하였다.(『선조실록』 39년 5월 14일),(『광해군일기』 1년 2월 18일) 이 시기는 <임진왜란(壬辰倭亂)>과 <정유재란(丁酉再亂)>이 끝난 직후로 전국에 각종 질병이 창궐하였다. 이 때 『언해두창집요』를 비롯하여 『동의보감(東醫寶鑑)』ㆍ『언해구급방(諺解救急方)』ㆍ『언해태산집요(諺解胎産集要)』ㆍ『벽역신방(辟易新方)』 등이 간행되었다.
『언해두창집요』의 주된 인용서목(引用書目)은 『의학입문(醫學入門)』·『고금의감(古今醫鑑)』, 전씨(錢氏)의 『소아직결(小兒直訣)』·『득효방(得効方)』·『만병회춘(萬病回春)』 등이다. 이 책은 원래 세조(世祖) 때의 내의(內醫)였던 임원준(任元濬)이 편찬한 『창진집(瘡疹集)』을 개편, 언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두창은 당시 치료가 매우 어려워 역대 국왕이 모두 이의 퇴치에 온힘을 기울였는데, 이 『창진집』이 의과(醫科) 초시(初試) 또는 관학(官學)에서 교본으로 사용된 것을 보면 그 중요성을 짐작할 수 있다.(『세조실록』 8년 2월 14일),(『성종실록』 3년 3월 14일) 이후 이 책이 언해된 뒤부터는 전문적인 치료 방법이 민간에까지 보급된 것으로 보인다.
서지 사항
총 2권 2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지질은 한지이다. 책의 크기는 세로 30.5㎝, 가로 21.9㎝이다.
현재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장서각, 연세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 산기문고, 성암문고 등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언해두창집요」는 천연두의 원인과 예방법, 증후, 해독법 등을 다룬 책이다. 허준은 오랜 기간의 치료 경험 및 국내외 천연두 치료의 성과들을 종합하여 불과 1년 만에 『두창집요(痘瘡集要)』를 편찬하였고, 이어 이것을 우리말로 번역하여 『언해두창집요』를 만들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상권에는 천연두의 원인, 예방법, 증상이 서술되어 있다. 증상 부분에서는 발열(發熱 : 3일간 열나는 것), 출두(出痘 : 3일간 발진이 내돋는 것), 기창(氣脹 : 3일간 발진이 부어오르면서 커지는 것), 관농(貫膿 : 3일간 발진 속에 고름이 차는 것), 수엽(收靨 : 3일간 발진 속의 고름이 흡수되면서 딱지가 앉는 것) 등 천연두의 특징적 증상들을 구체적으로 실었다. 이어 목이 쉬는 것, 목구멍이 아픈 증세, 요통, 경련, 구토, 설사 등 부차적인 증상들도 실려 있다.
하권에는 천연두 때 흔히 오는 합병증인 담천(痰喘), 번갈(煩渴), 가렵고 아픈 증, 배가 불러오르는 증, 변비, 도엽(倒靨 : 발진에 딱지가 앉지 못하는 것)에 대한 치료법과 눈을 보호하는 법, 흉터를 없애는 방법 등을 실었다. 뒷부분에는 부록으로 임신부의 천연두와 반진(斑疹)에 대한 내용도 서술하고 있다. 이후 『언해두창집요』는 편찬된 후 천연두 치료의 참고서로 널리 이용되었다. 그러나 『언해두창집요』에는 당시 의학의 발달 수준으로 인하여, 비과학적이고 비위생적인 내용들이 들어 있으므로, 비판적으로 참고해야 한다.
이 책은 당시의 우리말로 언해를 했으므로, 치료방문에 대한 낱말과 한자음 표기가 우리말 연구에 좋은 자료를 제공한다. 즉 중세국어와 근대국어 사이에 일어나는 언어현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임진왜란 이후 나온 문헌들과 마찬가지로 이 책에서도 다음과 같은 특징이 보인다. 첫째, 방점이 쓰이지 않고, ‘ㅸ’, ‘ㆆ’이 소실되었으나, ‘ㆍ’는 잘 쓰였다. 다만, 15세기 국어에서의 ‘ㆍ’는 다른 음소로 바뀌는 경우가 많았다. 둘째, 말 첫소리에서 각자병서는 잘 쓰지 않았지만, ‘ㅂ계’, ‘ㅅ계’의 합용병서는 잘 쓰였다. 셋째, 받침에서 ‘ㅅ’과 ‘ㄷ’을 혼합하여 사용하였다. 넷째, 구개음화 현상은 일어나지 않았다. 다섯째, 체언의 분철표기가 활성화되었다. 또한 이 책에서는 ‘구무/굼긔’, ‘두터비’, ‘디룡’, ‘머구릐밥’, ‘헝울’과 같은 우리 옛말을 사용하고 있어, 그 당시의 우리말을 연구하는 데 도움을 준다.
참고문헌
- 『세조실록(世祖實錄)』
- 『성종실록(成宗實錄)』
- 강순애, 「새로 발견된 내의원자본 언해두창집요에 관한 연구」, 『서지학연구』 19, 2000.
- 박종국, 『한국어 발달사』, 세종학 연구원, 1996.
- 정호찬, 「언해두창집요 해제」, 『역주 언해두창집요』, 세종대왕기념사업회, 2009.
- 최현배, 『고친 한글갈』, 정음사, 1961.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