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조(漁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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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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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어조 |
한글표제 | 어조 |
한자표제 | 漁條 |
상위어 | 수산업(水産業) |
동의어 | 어수(漁隧), 중선망(中船網) 어업(漁業) |
관련어 | 어전(漁箭), 어기(漁基), 어장(漁場) |
분야 | 경제/산업/수산업 |
유형 | 개념용어 |
지역 | 대한민국 |
시대 | 조선시대 |
왕대 | 조선시대 |
집필자 | 이욱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어조(漁條) |
고기떼가 다니는 길목에서 그물을 쳐서 물고기를 잡는 어업 형태를 말함.
개설
어조는 시기를 살펴 배를 타고 고기 떼가 다니는 길목에 닻을 던져 세우고, 배 밑에 그물을 설치하여 고기를 잡는 것이다. 계절에 따라, 또 어종에 따라 고기 떼가 다니는 길목은 다르다. 따라서 어조는 각 지역에 따라 그물을 던져 잡기도 하고, 또 그물을 고정해서 설치하고 거기에 걸린 고기를 거둬들이기도 하는 등 차이가 있었다.
내용 및 특징
『균역사목』과 『임원경제지』에 따르면, 어조는 시기를 살펴 배를 타고 고기 떼가 다니는 길목에 닻을 던져 세우고, 배 밑에 그물을 설치하여 고기를 잡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렇게 고기를 잡는 어선을 중선이라고 하고, 고기 잡는 그물을 중선망이라고 한다. 이 때문에 어조를 중선망 어업이라고도 부른다. 충청도에서는 어조로 젓갈 제조용 새우를 잡는 곳과 청어·조기 등을 잡는 곳이 있었다.
전라도의 경우, 조기잡이로 유명한 위도에는 각각 정해진 위치에서 어업을 하는 어조가 있었던 것으로 나타난다. 즉 『균역청사목』에 “위도 앞바다 종선 1척 1백 냥, 좌우 2등 2척 각 90냥…… 6등 2척 각 40냥, 좌 7등 1척 40냥”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이를 보면, 같은 어조라도 조업하는 위치와 배의 규모에 따라 어획고에 차이가 있었고, 또 그러한 차이에 따라 수세액도 달랐음을 알 수 있다.
경상도에서는 잡히는 어종에 따라 대구 어조와 청어 어조로 구분하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 『균역사목(均役事目)』
-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
- 박구병, 『韓國漁業史』, 정음사, 1975.
- 최승희, 『한국수산사』, 수산청, 1966.
- 이영학, 「조선후기 어업에 대한 연구」『역사와 현실』35 , 한국역사연구회, 2000.
- 이욱, 「조선후기 어염정책 연구」, 고려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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