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자성편(御製自省編)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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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어제자성편 |
한글표제 | 어제자성편 |
한자표제 | 御製自省編 |
분야 | 교훈서 |
유형 | 한문 |
지역 | 한국 |
시대 | 조선 |
왕대 | 영조 |
집필자 | 성낙수 |
저편자 | 영조 |
간행처 | |
간행년일 | 1746, 1759 |
권책수 | 2권 1책 |
사용활자 | 활자본(정유자(丁酉字)) |
표제 | 어제자성편(御製自省編) |
소장처 | 규장각, 국립중앙도서관, 연세대학교 도서관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어제자성편(御製自省編) |
이 책은 조선 제21대 왕인 영조(英祖)가 1759년(영조 35) 후손에게 교훈을 주기 위해 지은 교훈서다.
개설
이 책은 영조가 자신을 성찰하고, 왕세자에게 교훈을 주기 위해, 경전과 역대 역사서에서 성군들의 정치이념 중 성군이 되기 위한 내용과 정사를 수행하면서, 모범이 될 만한 내용을 뽑아 편찬한 책이다. 한문본은 1746년(영조 22) 문정전(文政殿)에서 2권 2책으로 편집하여, 목판본으로 간행하였다.
책의 체재는 수서(首序), 내편(內篇), 외편(外篇), 후발(後跋), 소지(小識), 고교제신함명(考校諸臣啣名)으로 이루어졌으며, 수서와 후발에는 1746년 2월 17일 지었다는 기록이 있다. 『영조실록(英祖實錄)』에서 영조는 정재륜(鄭載崙)의 『공사견문록(公私見聞錄)』처럼 글을 지어, 『자성편(自省編)』이라 하였으며, 심신(心身)을 위주로 하는 내편과 감계(監戒)를 위주로 하는 외편으로 구성함을 밝혔다.
영조는 수서에서 이 책이 평소 일을 처리하는 과정에 ‘지난 일을 생각하며, 감흥이 있는 것[追慕而興感]’, ‘생각하여 하나라도 얻은 것[思慮而一得]’, ‘잘못하였다가 문득 깨달았던 것[過差而旋悟]’, ‘역사기록을 보다가 깨달아 자신을 돌아보았던 것[看史而反己]’을 주 내용으로 하고 있음을 밝혔다. 또한 원량인 세자에게 보여 감계하려 저술하였음도 함께 밝히고 있다. 영조 자신이 실행하지 못했던 것들을 세자에게 당부함으로써 자신의 뜻과 사업이 계승되기를 기대하였다. 정자체로 반듯하게 적은 필체며, 장황은 이 책에 대한 왕실의 관심과 정성을 보여주고 있다.
편찬/발간 경위
이 책은 1746년(영조 22)에 영조가 유교 경전과 역사서에서 개인의 수양과 국가의 정치에 유익한 항목을 간추려 편집한 책이다. 책의 편찬과 교정은 영조의 경연관(經筵官)들이 맡았고, 금속활자인 정유자(丁酉字)로 인쇄했다. 책의 서문(序文)과 발문(跋文)은 영조가 직접 작성했으며, ‘내편’에서는 유교 경전을 인용하여, 개인의 수양을 이야기했고, ‘외편’에서는 역사서를 인용하여 국가의 정치를 이야기했다.
영조는 이 책에서 서연(書筵)과 경연(經筵)에서 학습한 서적, 세종과 숙종을 비롯한 선왕들의 행적, 자신의 정치적 경험을 바탕으로 후계자에게 가르침이 될 내용을 정리했다. 그는 『소학(小學)』, 『역대군감(歷代君鑑)』, 『역대신감(歷代臣鑑)』, 『대학연의보(大學衍義補)』 같은 서적을 인용했고, 특히 『주례(周禮)』와 주관(周官)의 제도를 주목했다. 또한 그는 세종의 기일에 이 책의 서문과 발문을 작성하고, 숙종의 경천(敬天)과 애민(愛民)을 강조하면서, 두 선왕의 행적을 계승하겠다고 다짐했다.
이 책은 원래 사도세자에게 제왕학을 가르치기 위해 작성한 교재였다. 궁중에서 편안하게 자란 사도세자에게 특별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영조는 사도세자에게 자신이 일상생활에서 절실하게 느낀 바를 전수하려 했으며, 사도세자가 사망한 후에는 정조에게 동일한 기대를 했다.
이 책은 영조에서 사도세자, 정조에 이르기까지 제왕학 교재로 꾸준히 활용되었다. 영조는 후대의 국왕들이 이 책을 읽으면서, 자신의 행적을 계승하고 자신의 부족한 점을 보완하는 사람이 되어주기를 기대했다. 그는 조선 왕실의 가법(家法)을 제대로 계승한 후계자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서지 사항
2권 1책으로 구성되어 있고, 목판본(25판)이다. 사주쌍변이고, 반곽은 23.0×33.0cm이다. 18행 17자의 유계, 상하향2엽화문어미를 갖추고 있고, 크기는 26.0×53.0cm이며, 규장각, 국립중앙도서관, 연세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이 책은 영조가 스스로를 반성하는 한편, 세자(世子)를 가르칠 목적으로 유교 경전과 역사서에서 수신(修身)과 위정(爲政)에 관련된 내용을 주제로 자신의 견해를 기록한 책이다. 이 책에서 영조는 수신의 요체를 마음을 다스리는 것으로 보았고, 위정의 요체를 기미(幾微)를 살피는 것으로 보았다. ‘기미를 살핀다는 것’은 선악(善惡)이 나뉘는 조짐을 살핀다는 것으로, 선한 인재를 변별하고 등용하여 국가를 다스리는 바탕으로 삼는다는 의미이다.
이 책은 영조가 짓고 문정전에서 편집하여, 1746년에 간행하였다. 영조가 쓴 서문에 따르면, “자신의 마음을 닦고, 정치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글”이라는 뜻에서 제목을 ‘자성론(自省編)’이라 명명하였다. 그래서 ‘수기치인(修己治人)’의 방법론을 제시한 ‘내편’과 사물을 다스리는 ‘외편’으로 되어 있다.
본문의 내편은 ‘내수지사(自修之事)’, 외편은 ‘위치지사(爲治之事)’로서 내편은 ‘욕자수유정심 정심지도 경전상비(欲自修惟正心 正心之道 經傳詳備)’라 하여, 주로 경(經)·전(傳) 등 저서를 통해, 역대 성현들의 언행을 서술했고, 외편에선 『사기(史記)』 등 제서에서 제왕(帝王)들의 본받을 만한 선행을 가려 자신의 정치이념으로 삼아 서술한 것이다.
권1은 내편에 해당하는데, 112조목의 수신에 관한 내용으로 영조 자신이 부왕을 7년 시탕(侍湯)하던 일, 경종(景宗)과의 형제애 등을 기록하였다.
권2는 외편에 해당하는데, 치인(治人)에 요긴한 내용이 108조목에 걸쳐 수록되었다. 주로 『사기』 등 역대 사서에서 제왕들의 본받을 만한 선행을 가려, 자신의 정치이념으로 삼아 서술하였다.
영조는 젊은 시절부터 노론(老論)과 소론(少論)의 격렬한 당쟁을 목도하였고, 왕세제(王世弟)가 되어서는 충역(忠逆) 시비로 발생한 신임사화(辛壬士禍)의 참상을 몸소 겪었다. 이를 통해 어느 당파도 믿을 수 없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낀 영조는 왕으로 즉위하여, 탕평책(蕩平策)을 시행하였다. 당파의 이익이나 사적인 호오(好惡)가 아닌, 개인의 능력과 선악에 따라, 인재를 등용함으로써, 왕권을 강화하고, 국가의 발전을 도모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의의와 평가
이 책에서 영조가 당파의 이익이나 사적인 호오가 아닌, 개인의 능력과 선악에 따라 인재를 등용함으로써 왕권을 강화하고, 국가의 발전을 도모하고자 하였던 정치이념과 교훈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 배영환, 「장서각 소장 영조 어제 언해서류(1)-『어제자성편(언해)』와 『어제속자성편(언해)』를 중심으로-」, 『장서각 소장 한글필사자료 연구』, 태학사, 2007.
- 송지원, 「영조대 국가전례정책의 제 양상」, 『공연문화연구』 제17집, 한국공연문화학회, 2008.
- 이경구, 「1740년(영조 16) 이후 영조의 정치 운영」, 『역사와 현실』 통권53호, 한국역사연구회, 2004.
- 조윤선, 「조선후기 영조 31년 乙亥獄事의 추이와 정치적 의미」, 『한국사학보』 제37호, 한국사학회, 2009.
- 황문안 외, 『역주 어제속자성편(언해)』, 역락,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