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의궁(於義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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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의 잠저(潛邸) 또는 효종이 봉림대군(鳳林大君) 시절에 머물던 궁가(宮家).

개설

『조선왕조실록』에 등장하는 어의궁은 두 종류이다. 하나는 인조의 잠저였던 향교동(鄕校洞) 어의궁이고, 다른 하나는 효종의 봉림대군(鳳林大君) 시절 잠저이면서 즉위 후 본궁(本宮)이 된 어의동(於義洞)의 어의궁이다. 조선말기에 인조의 잠저를 상어의궁(上於義宮)이라 하고, 효종의 잠저를 하어의궁이라고 하였다. 이에 따라 이 둘을 상·하어의궁으로 구분하고 있다.

향교동 어의궁은 인조의 어휘(御諱)를 봉안하는 곳으로 기능하였다. 어의동 어의궁은 효종 즉위 후 본궁으로 이름을 바꾸어 1907년(융희 1) 국가의 소유가 되기까지 왕실의 내탕을 조달함과 동시에 가례를 치를 때 임시로 사용하는 별궁의 기능을 했다.

위치 및 용도

인조의 잠저이면서 어휘를 봉안했던 상어의궁은 한성부 중부 경행방(慶幸坊)향교동에 위치했다. 현재 행정 구역 명칭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낙원동 일대이다.

효종의 잠저이면서 왕실의 별궁 역할을 했던 하어의궁은 동부(東部)의 숭교방(崇敎坊)에 자리했다. 현재 행정 구역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연지동 일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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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천 및 현황

상어의궁은 인조가 1623년(광해군 15) 반정(反正)을 일으켜 왕이 되기 전에 살던 곳이다. 인조는 아버지인 정원군(定遠君)의 제택(第宅)인 송현궁(松峴宮: 뒤에 저경궁이 됨)에서 태어나 1607년(선조 40) 능양도정(綾陽都正)에 봉해지고 이어 능양군(綾陽君)에 봉해졌다. 인열왕후(仁烈王后)가 되는 청주한씨(淸州韓氏)와 혼인한 것은 1610년(광해군 2)으로, 이때부터 상어의궁으로 나와 살기 시작한 것으로 추측된다. 1623년에 서인인 김유(金瑬)·이귀(李貴)·이괄(李适)·최명길(崔鳴吉) 등이 일으킨 정변에 힘입어 왕위에 올랐다. 이후 상어의궁은 인조의 어휘를 봉안하는 곳으로 남게 되었다. 1756년(영조 32)에 영조가 거둥하여 봉안각에 배례하고 ‘인묘고궁(仁廟古宮)’이라 써서 현판으로 걸게 하였다(『영조실록』 32년 4월 10일).

하어의궁은 효종이 왕자 시절 살던 궁가로 용흥궁(龍興宮)이라고 하였다. 용흥궁이라는 궁호는 1759년(영조 35)에 영조가 어의궁에 들러 「용흥구궁소지(龍興舊宮小識)」를 지었다는 내용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영조실록』 35년 윤6월 28일). 효종은 1619년(광해군 11) 인조의 제택이었던 상어의궁 즉 향교동 어의궁에서 태어났다. 8세 되던 1626년(인조 4)에 봉림대군에 봉해졌다. 1631년(인조 9) 인선왕후(仁宣王后)와 가례(嘉禮)를 행하고 궐 밖으로 나와 살기 시작했다. 하어의궁은 이때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봉림대군은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형 소현세자(昭顯世子) 및 홍익한(洪翼漢)·윤집(尹集)·오달제(吳達濟) 등과 함께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가 선양[瀋陽]에 8년 동안 머물렀다. 그동안 어의궁은 비어 있는 궁가가 되었다. 1645년(인조 2) 소현세자가 죽고 선양에서 돌아온 봉림대군이 왕세자로 책봉되어 궐내로 들어갔다. 1649년(효종 즉위) 5월 봉림대군이 왕으로 즉위하면서 하어의궁은 본궁이 되었다. 이후 하어의궁은 왕실의 내탕을 조달하고 관리하는 기능과 동시에 왕과 왕세자가 가례를 올리는 별궁으로 기능했다.

1907년(융희 1) 궁내부령(宮內府令)에 의하여 궁의 업무를 담당하던 도장을 폐지하고 제실 재산 정리국 관제(帝室財産整理局官制)에 의하여 모든 재산이 제실관리국으로 넘어갔다(『순종실록』 즉위년 11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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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태

효종의 잠저였던 하어의궁의 모습은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는 「인평대군방전도(麟坪大君坊全圖)」를 통해서 알 수 있다. 해당 그림은 봉림대군과 인평대군의 궁가를 그려서 서로 맞대어 붙인 그림이지만 「인평대군방전도」로만 알려져 있다.

그림의 하단부에 있는 궁가는 어의궁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중심에 1751년(영조 27) 10월 8일 영조가 어의궁에 방문하여 올랐던 조양루(朝陽樓)가 있는 것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참고문헌

  • 주남철, 『궁집』, 일지사,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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