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덕당(養德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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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궁에서 세자를 위한 공간으로 사용하던 전각.

개설

양덕당은 경희궁의 남동쪽 영역에 위치하여 경현당(景賢堂)과 연계하여 사용되었다. 경현당은 세자가 경서를 강독하고 하례를 받았던 곳이다.

위치 및 용도

양덕당은 경현당의 북쪽에 있고 남쪽에는 숭덕문(崇德門)을 두었다. 경희궁에서 승휘전(承暉殿)이 세자의 정침이었을 때 양덕당은 동궁의 내당(內堂)으로 사용되었다. 승휘전은 효종 때 철거하여 창덕궁 만수전(萬壽殿)을 짓는 데 사용하였고(『효종실록』 6년 12월 11일), 숙종 때 중건하였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화재로 소실된 후 중건하지 않았다(『숙종실록』 24년 11월 22일). 승휘전이 없어진 후 양덕당은 경현당에서 행사가 있을 때 부속 공간으로 사용하기도 하고, 내전(內殿)의 일반적인 생활 공간으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변천 및 현황

정조가 지은 「경희궁지(慶熙宮志)」에 보면, 양덕당은 1698년(숙종 24) 승휘전이 불타기 전에 쓰던 동궁의 내당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양덕당의 용도는 다양하다. 대표적인 예가 경현당에서 행사가 있을 때 준비 공간으로 사용한 것이다. 사도세자(思悼世子)의 어머니인 영빈이씨(暎嬪李氏)와 혜경궁(惠慶宮) 홍씨(洪氏)가 이곳에 머물기도 하였다. 이 시기는 이미 승휘전이 소실되어 세자의 생활 공간이 옮겨진 후이다.

1818년(순조 18)에 덕화전(德和殿)으로 이름을 고쳤다. 하지만 이후의 기록에서도 양덕당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였다.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훼철되어 현존하지 않는다.

형태

「서궐도안(西闕圖案)」에서만 그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양덕당을 중심으로 동쪽에 함춘헌(咸春軒), 서쪽에는 안희헌(安喜軒)이 배치되어 있다. 널찍한 안마당을 갖춘 팔작집으로 묘사되어서 위계가 높은 건물 중 하나로 보인다.

관련사건 및 일화

1764년(영조 40) 영조의 후궁인 영빈이씨가 양덕당에서 세상을 떠났다. 아들인 사도세자가 사망한 지 2년 뒤의 일이다.

참고문헌

  • 『궁궐지(宮闕志)』「서궐도안(西闕圖案)」
  • 서울시립대학교 서울학연구소 편, 『궁궐지Ⅱ: 창경궁·경희궁·도성지』, 서울시립대학교 서울학연구소, 1996.
  • 영건의궤연구회, 『영건의궤 -의궤에 기록된 조선시대 건축』, 동녘, 2010.
  • 홍석주, 「조선조 광해군대의 궁궐건축에 관한 연구」, 홍익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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