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불수(夜不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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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 군사 중 초탐, 간첩 등의 특수한 임무를 맡았던 사람.

개설

야불수는 명나라 때 ‘돈대초병(墩臺哨兵)’ 중 정찰대오(偵察隊伍)를 일컫는 말이다. 특히 요동 방어 군사 중 초탐(哨探), 간첩(間諜) 등의 특수한 임무를 맡았던 사람들을 일컫는다.

돈대초병은 ‘돈야(墩野)’ 혹은 ‘직발(直拔), 횡발(橫拔)’로도 불렸는데, 주로 돈대 및 그 부근 지역의 초소를 지키거나 보초를 서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돈대초병 중에는 ‘초야(哨夜)’, ‘야불수(夜不收)’라 불리면서 적의 경계까지 나아가서 잠입하여 정찰 활동을 하는 초병들도 있었다. 이들은 적이 있는 최전방에서 활동하였기 때문에 적에게 살육과 노략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명나라에서는 ‘야불수’를 특수 사명을 띤 특수 신분으로 보았지만, 실제 요동 등지의 ‘야불수’는 정찰 임무를 띤 토병(土兵)이었다.

담당 직무

적의 정세를 정탐하거나 간첩 활동을 하였으며, 중요 소식을 알리는 전령(傳令) 및 파발(擺撥), 사령(使令)을 받아 사람을 압송하거나 차출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또한 적과의 교섭 시에 적의 진영에 들어가 문서를 전달하거나 소식을 전하는 등의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변천

임진왜란 때 명의 원군이 파견되면서 야불수도 적극적으로 활용되었다. 야불수는 단순히 정찰과 간첩 활동만이 아니라 군사 소식을 전하는 전령 및 파발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일례로 평양성 전투 후 제독(提督)이여송(李如松)은 야불수 왕진(王眞)을 보내어 일본군을 모두 격퇴하였음을 조선에 알리고 있다(『선조실록』 26년 1월 10일).

한편 이여송이 전라감사(全羅監司)권율(權慄)을 압송할 때 야불수 2인을 파견한 것, 명의 경략(經略)송응창이 호남과 영남의 관량관(管糧官)조신도(趙信道)와 임발영(任發英)을 잡아갈 때 야불수 1인을 파견한 것을 보면, 지휘관의 사령을 받아 죄인을 압송하거나 차출하는 데도 활용된 것으로 보인다(『선조실록』 26년 5월 3일)(『선조실록』 26년 8월 27일). 또한 명군이 일본군과 강화 협상과 관련된 문서 또는 비밀리에 문서를 받는 일에도 야불수를 파견하였다(『선조실록』 27년 11월 10일).

참고문헌

  • 柏樺, 「明代的夜不收軍」, 『古代文明』第7卷 第1期, 2013.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