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협현(安峽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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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안협 지방을 다스리던 관아. 조선시대 안협 지방을 통치하던 관청 및 행정기구.

개설

고려초기에 안협현(安峽縣)으로 삭방도(朔方道)에 편제되었고, 동주(東州)의 속현(屬縣)이 되었다. 중기에 감무(監務)가 파견되었으며, 이후 감무 체제로 지속되었다. 조선초기에 경기좌도로 편제되었다가 8도제가 시행되면서 삭녕군(朔寧郡)과 통합되어 안삭군(安朔郡)으로 재편되었으나 곧이어 분리되면서 현감(縣監)이 배치된 주현(主縣)으로 승격되었다. 세종 때에 강원도로 이속되었다.

설립 경위 및 목적

고구려에서 아진압현(阿珍押縣) 또는 궁악(窮岳)이라 하였다. 신라에서 안협현으로 고쳐 토산군(兎山郡)의 영현(領縣)으로 삼았다.

고려 995년(고려 성종 14)에 10도제에서 삭방도에 편제되었다. 1018년(고려 현종 9)에 동주(東州)의 속현이 되었으며, 1114년(고려 예종 9)에 감무를 두었다.

조선 1394년(태조 3)에 경기도를 좌·우도로 구분할 때 좌도에 편제되었다(『태조실록』 3년 6월 23일). 1413년(태종 13)에 8도제가 시행되면서 경기도 삭녕군에 통합되어 안삭군이라 불렸으며, 1416년(태종 16)에 분할하여 현감이 배치됨으로서->써 주현으로 승격되었다. 1434년(세종 16)에 안협과 철원이 강원도에 이속되었다. 1455년(세조 1)에 군익도(軍翼道) 체제에 따라 철원도(鐵原道)를 설치하고, 안협은 중익(中翼)으로 편제하였다(『세조실록』 1년 9월 11일). 1457년(세조 3)에 군익도 즉 3익(三翼) 체제를 폐지하고 거진(巨鎭)을 설치하는 진관(鎭管) 체제에서 안협은 회양진(淮陽鎭)에 귀속되었다(『세조실록』 3년 10월 20일). 1692년(숙종 18)에 회양진 소속의 여러 진을 철원영장(鐵原營將)으로 이속시켰다.

조직 및 역할

조선초기에 현감과 훈도(訓導) 각 1인을 배치하였다. 현감은 6품으로 음관(蔭官)직이었다. 수령 예하에 향청(鄕廳)을 두고 좌수(座首) 1인과 별감(別監) 2인을 배치하였다. 6방(六房) 관속의 규모는 후대에 이르면서 증원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여지도서(輿地圖書)』에서는 군관(軍官) 2인, 아전(衙前) 17인, 지인(知印) 13인을 두었다. 그리고 사령(使令) 6명, 관노(官奴) 13명, 관비(官婢) 7명을 두었다. 6방 관속은 객사(客舍), 아사(衙舍), 훈련청(訓練廳) 등에 배속되어 실무를 분장하였다.

변천

1895년(고종 32)에 지방관제의 개혁 차원에서 8도제를 폐지하고 23부제를 시행하면서 강원도는 춘천부와 강릉부로 분할되었다. 아울러 군현제가 폐지되고 각 부의 하부조직은 군(郡)제로 일원화되었다. 이때 안협은 안협군이 되었고 춘천부에 귀속되었다. 1896년(고종 33)에 23부제를 폐지하고 13도제를 시행하면서 춘천부와 강릉부는 통합되어 강원도가 되었다. 이때 안협군은 강원도에 귀속되었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경국대전(經國大典)』
  • 『관동읍지(關東邑誌)』
  • 『관동지(關東誌)』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여지도서(輿地圖書)』
  • 강원도, 『강원도사』11, 강원도사 편찬위원회,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