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처겸옥사(安處謙獄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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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1년(중종 16) 송사련·정상이 모의하여 안처겸 등이 변란을 꾀하고 있다고 무고하여 발생한 옥사.

개설

이 사건은 안처겸(安處謙) 집안과 가족처럼 지내던 송사련(宋祀連)이 기묘사화 이후의 정치 상황에 대한 안처겸의 불만 토로와 행실을 남곤·심정에게 고변(告變)하면서 발생하였다. 남곤·심정 등은 이 사건이 무옥(誣獄)임에도 불구하고 안처겸을 역모로 간주하여 안처겸과 교류하던 많은 사림을 여기에 연루시켜 축출하였다. 신사년(1521년)에 발생하였다고 하여 신사무옥(辛巳誣獄)이라고도 한다.

역사적 배경

기묘사화(1519년)의 여파로 조광조 등의 사림이 대거 축출되고, 남곤·심정 등의 훈구계 권신(權臣)이 집권해 있는 상황에서 이 사건은 발생하였다. 안당(安瑭)은 조광조 등 사림의 정치 운영을 지지했던 인물이고, 그의 아들 안처겸·안처함(安處諴)·안처근(安處謹)은 모두 현량과에 급제한 인물들이었다. 이 사건은 기묘사화 이후 사림이 대거 축출된 뒤 권신이 집권하면서 자신들의 권력 기반을 공고히 하기 위해 사림의 배후 인물까지 역모로 몰아 제거한 것이다. 이 사건은 남곤·심정 등의 훈구 세력이 사림계 인물들을 제거하기 위해 일으킨 무고(誣告) 사건이었다.

발단

송사련은 1521년 10월 처남인 정상(鄭鏛)을 시켜 안처겸이 시산부정(詩山副正)이정숙(李正叔)·권전(權磌) 등과 함께 남곤·심정 등의 대신을 살해하기로 모의했다고 고변하게 하였다. 그리고 안처겸 모친상 때의 조객록(弔客錄), 발인 때의 역군부(役軍簿) 등이 이 모의의 물증이며, 그의 부친 안당이 이를 말리다 못해 고향 집으로 내려갔다고 주장하였다(『중종실록』 16년 10월 11일). 그 결과 안당·안처겸·안처근을 비롯하여 이들과 평상시에 교류하던 이정숙·권전·안정(安珽)·이충건(李忠楗)·이약수(李若水)·조광좌(趙光佐) 등의 사림이 붙잡혀 역모죄로 처벌되었다(『중종실록』 16년 10월 16일).

경과

이 사건을 무고한 송사련은 그 공으로 절충장군(折衝將軍)의 품계로 승진하고 죄인들에게서 몰수한 전답, 가옥, 노비를 받았다. 이때 화를 입은 사림이 신원된 것은 사림이 다시 정계에 등용되기 시작한 1540년(중종 35)부터이다. 이때 사림의 일부가 신원되었다. 그리고 권신·척신 정치가 해소된 1566년(명종 21)에 안당의 손자 안윤(安玧)의 상소로, 이전에 화를 입었던 안처겸 등 대부분의 인물이 신원되고 직첩(職牒)을 돌려받았다.

참고문헌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국사편찬위원회 편, 『한국사 28: 조선 중기 사림 세력의 등장과 활동』, 국사편찬위원회, 1996.
  • 국사편찬위원회 편, 『한국사 30: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국사편찬위원회, 1998.
  • 김돈, 『조선 전기 군신 권력 관계 연구』, 서울대학교출판부, 1997.
  • 김돈, 『조선 중기 정치사 연구』, 국학자료원, 2009.
  • 김범, 『사화와 반정의 시대: 성종·연산군·중종과 그 신하들』, 역사비평사, 2007.
  • 이병휴, 『조선 전기 사림파의 현실 인식과 대응』, 일조각, 1999.
  • 최이돈, 『조선 중기 사림 정치 구조 연구』, 일조각, 19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