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구사략(十九史略)

sillokwiki
이동: 둘러보기, 검색



1446년 중국 명나라의 여진 종해(余進宗海)가 원나라 증선지(曾先之)가 편찬한 『십팔사략(十八史略)』에 『원사(元史)』를 추가하여 만든 책.

개설

중국 역사에서 하ㆍ은ㆍ주ㆍ수ㆍ당 등 열여덟 왕조의 역사를 간략하게 정리하여, 원나라 증선지(曾先之)가 편찬한 것이 『십팔사략(十八史略)』인데, 『십구사략(十九史略)』은 1446년 명나라의 여진 종해(余進宗海)가 이 책에 『원사(元史)』를 추가하여 만든 책이다. 이 책의 원명은 『고금역대표제주석십구사략통고(古今歷代標題註釋十九史略通攷)』인데 줄여서 『십구사략통고』 또는 『십구사략』이라 부른다.

한문으로 씌어진 『십구사략통고』는 방대한 중국 역사를 요령 있게 압축했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중국 역사의 학습 및 한문 학습 교재로 널리 이용되었다. 언해판 『십구사략언해』은 한문본 『십구사략통고』의 권1과 권2를 우리말로 번역한 것인데, 권1과 권2를 각각 2책으로 나누어 간행하였다. 권1의 언해본은 여러 종류의 이본이 전해지고 있으나, 권2의 언해본은 단 1책만 전해지고 있다.

서지 사항

2책으로 구성되어 있고, 목판본이다. 크기는 세로 29.2cm, 가로 21.0cm이며,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서울대학교 규장각에서 소장하고 있는 『고금역대표제주석십구사략통고(古今歷代標題註釋十九史略通攷)』는 중국에서 만든 『고금역대표제주석깁구사략통고(古今歷代標題註釋十九史略通考)』(줄여서 『십구사략통고(十九史略通考)』라 함)에‚ 조선의 정창손(鄭昌順;1727-?)이 찬(撰)한 『명사(明史)』를 합하여, 간행한 9권 8책의 한문본이다.

이와 같은 이름으로 1744년(영조 20)에 술신자(戊申字)로 간행된 것으로 추정되는 책도 있는데, 이는 정창순의 『명사(明史)』가 포함되지 않은 8권 7책의 책이다. 이 책도 9권 8책이었을 것으로 보기도 하지만‚ 정창순의 생년이나 책 마구리의 ‘공칠(共七)’이라는 표시로 미루어, 8권 7책이었음이 확실해 보인다.

『십구사략통고』는 방대한 중국 역사를 요령 있게 간추린 중국 역사 입문서로서 일찍부터 널리 이용되었기 때문에 여러 번 간행되었고‚ 1772년(영조 48)에는 언해되기까지 하였다. 규장각에는 8권 7책의 무신자본과 9권 8책의 정유자본(丁酉字本)‚ 그리고 그 복각본 및 19세기 말의 방각본‚ 필사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책들이 소장되어 있는데‚ 『십구사략통고』 1~4에는 전체‚ 또는 부분적으로 차자 구결이 묵서(墨書)ㆍ남서(藍書)ㆍ주서(朱書)로 기입되어 있어, 국어사 자료로 이용될 수 있다.

사략(史略)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원(元)나라 사람 증선지(曾先之)가 지은 『십팔사략(十八史略)』을 생각하지만, 조선시대에 읽힌 『사략』은 『십팔사략』에 원사(元史)를 더한 『십구사략(十九史略)』이다. 『십구사략』은 활자본이나 목판본으로 나온 관판본이 많이 있지만, 19세기부터 방각본도 간행되기 시작한다.

방각본 『십구사략』은 8권 7책이나, 10권 8책의 완질을 간행한 것이 아니라, 주로 1권만 간행했다. 방각본 『십구사략』이 1권만 간행된 이유는, 20세기 중반까지 남아 있던 서당에서 이 『십구사략』 1권을 교재로 썼기 때문이다. 서당에서는 3권까지도 가르쳤지만, 주로 1권에서 끝을 냈다. 1권은 태고(太古)에서 춘추전국(春秋戰國)까지이고, 2, 3권은 진(秦), 한(漢), 삼국시대인데, 서당의 교육에서는 이 정도의 지식을 가르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음을 알 수 있다.

이 책의 발문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들어 있다.

“양한(兩漢) 이후 송명(宋明)에 이르기까지 저마다 역사가 있다. 역사를 저술한 수많은 역사가들이 모두 전기를 썼는데, 번잡한 내용을 줄이지 않았기 때문에 장서가들은 모든 책을 갖출 수 없고, 옛일에 박식한 사람이라도 두루 잘 알 수 없었다. 사마광(司馬光)이 『자치통감(資治通鑑)』을 저술한 이후 역대의 흥망과 군신의 사적을 한 번 보고 모두 아우를 수 있었지만 책의 분량이 너무 많아 또한 집집마다 소장하고, 사람마다 외울 수 없었다. 그러다가 소미(少微 ; 강지(江贄)) 선생의 『통감절요(通鑑節要)』가 널리 퍼지자, 시골 글방에서 공부하는 이들마저 모두 주대(周代)부터 당대(唐代)의 역사를 알고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증선지(曾先之)의 『십구사략(十九史略)』은 글이 간결하면서도, 사실이 잘 갖추어져 있으며, 말이 간략하면서도, 뜻이 잘 구비되어, 오히려 뛰어난 점이 있다.

더욱이 위로 천지가 개벽할 때부터 아래로 송원(宋元)에 이르기까지 6만 8000년의 일들이 모두 7편에 실려 있어, 부인들과 아이들도 이야기할 수 있고, 나무꾼과 목동들도 모두 외울 수 있으니, 그 공효가 도리어 옛 역사가들보다 훌륭한 점이 있었다.

그런데 『명사(明史)』의 경우는 이미 증씨의 『십구사략』 이후에 저술한 것이고, 삼국 시대 『황명통기(皇明通紀)』ㆍ『황명기략(皇明紀略)』ㆍ『명기편년(明紀編年)』 등 크고 작은 몇 종의 책들이 세상에 유행하였다. 그 문장은 모두 소설(小說) 체재를 띠고 있어, 그저 펼쳐 열람할 뿐 읽고 외울 만하지 않으며, 또 오로지 방언과 이두를 사용하여 순수한 역사 문체가 아니다. 쓸데없는 내용이 지루하게 섞여 있고, 단지 번잡하게 편성된 책이기에 마침내 시골에서도 유행되지 않았으니, 비록 숙유(宿儒)라 하더라도 오히려 볼 수 없음을 골칫거리로 여기는데, 하물며 어린 선비의 경우에 있어서랴.”

의의와 평가

이 책은 20세기 이후에도 그 이름을 바꾸어 여러 번 간행되었는데, 중국의 역사 공부와 한문 학습에 쓸모가 있었기 때문이다. 또 중국 고대사의 재미있는 이야기를 담고 있어서, ‘옛날이야기’ 같은 소설적 흥미를 준다. 다른 문헌에 보이지 않는 특이한 어휘가 쓰였고, 오랫동안 여러 번 간행되었기 때문에 국어가 시대에 따라 변화해 온 모습을 연구하는 데 좋은 자료가 된다.

참고문헌

  • 김윤수, 「《십구사략》의 원류와 한국적 전개(上)」, 『서지학보』 6호, 한국서지학회, 1992.
  • 김윤수, 「《십구사략》의 원류와 한국적 전개(下)」, 『서지학보』 7호, 한국서지학회, 1992.
  • 오종갑, 「컴퓨터를 이용한 근세국어 어휘 색인-종덕신편언해, 십구사략언해, 천의소감언해, 명의록언해를 중심으로」, 『한국학논집』 제13집, 계명대학교 한국학연구원, 1986.
  • 이윤석, 「방각본 『십구사략』 간행의 양상과 의미-1권을 중심으로-」, 『동방학지』 168권,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