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복사(心福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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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파주시 장단면에 소재한 사찰.

개설

심복사는 창건과 조선후기 이전의 역사에 대해 알려져 있지 않으며, 기록에 따라 ‘심복사(心福寺)’ 또는 ‘심복사(心腹寺)’로 표기되어 있다. 조선후기의 기록 중 공초(供招)나 승병에 관한 기록에서 심복사가 등장한다. 18세기에 승려 선징영암(善徵映菴)이 심복사에 머물며 보광암을 창건하였고, 그 제자 신호장로(信浩長老)가 중수하였다.

내용 및 특징

심복사는 경기도 파주시 장단면(長湍面)에 소재한 사찰이며, 그 창건과 내력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다만 『조선왕조실록』 등의 몇 가지 기록을 통해 추정할 수 있을 뿐이다. 『조선왕조실록』을 제외한 다른 기록에는 ‘복(福)’이 아닌 ‘복(腹)’, 즉 ‘심복사(心福寺)’가 아니라 ‘심복사(心腹寺)’로 기록되어 있다.

1722년(경종 2) 역적으로 붙잡힌 이희지(李喜之)에 대한 공초 기록에서 심복사(心福寺) 뒤에 명당이 있다고 하였다(『경종실록』 2년 4월 17일). 1727년(영조 3)에 심복사(心腹寺)의 승병(僧兵) 1명이 남한산성(南漢山城)에 속해 있다가 경기도 개풍군천마산에 있는 대흥산성(大興山城)으로 옮길 것에 대해 임금에게 아뢰는 내용이 있다. 또한 1797년(정조 21)에 진순득(秦順得)이 이득재(李得才)를 구타하여 죽게 한 사건의 옥사와 관련한 기록에서 심복사(心腹寺) 승려 서잠(瑞潛)의 진술 내용이 『일성록(日省錄)』에 나온다. 이 외에도 19세기에 편찬된 취문당(聚文堂) 『수법(數法)』 1권의 저자가 심복사(心腹寺) 승려 선징영암(善徵映菴)으로서 삭녕(朔寧) 사람이고 속성이 최씨라고 하였다

화악지탁(華嶽知濯)이 쓴 「장단심복사보광전송월루중수기(長湍心腹寺普光庵松月樓重修記)」에 따르면, 선징영암이 심복사에 50여 년 머물면서 1761년에 보광암(普光庵)을 창건하였고, 그 제자인 신호장로(信浩長老)가 1794년에 중수하였다고 한다.

참고문헌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일성록(日省錄)』
  •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
  • 『한국불교전서(韓國佛敎全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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