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록(審理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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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조선 후기 정조 연간의 각종 범죄인에 대한 판례집이다.

개설

1785년(정조 9) 9월에는 영조 대에 시작된 전율통보(典律通補)에 대해 따로 관청을 만들어, 이를 수정·증보하는 작업에 착수하여, 1787년(정조 11)에 최종 완성했다. 1790년(정조 14)에는 영조 대에 만들어진 『증수무원록(增修無冤錄)』에 대하여 다시 고증하여 바로잡고, 한글로 토를 달고 필요한 주석을 달게 하는 작업을 하여, 『증수무원록언해(增修無冤錄諺解)』 또는 『증수무원록대전(增修無冤錄大全)』이라고 불리는 『검험법서(檢驗法書)』를 1792년(정조 16) 11월에 간행하였다.

정조는 1798년(정조 22) 5월부터 좌승지홍인호(洪仁浩)와 그의 동생 홍의호(洪義浩)가 정조의 결재를 받고, 정조가 손수 판결했던 각종 죄인의 심리와 처리에 대한 기록을 엮었다. 1799년(정조 23)에 내용을 교정하여, 1801년(순조 1)에 『심리록(審理錄)』이란 명칭으로 간행되었다.

이 책은 정조가 재위 기간 중 직접 처리한 사죄에 대한 판부 등이 거의 2천 건으로 추측되는데, 『심리록』에는 그 중 1,112건의 사건이 연도별, 군현별로 분류되어 수록되어 있다. 사건 하나하나마다 죄인이 거주하는 군현명과 성명, 사건 개요, 관찰사와 형조의 조사 보고, 국왕의 판결 순으로 적었다. 사건 개요에는 사건이 일어난 원인과 피해자, 사망일자, 사건이 관에 접수된 시기 등을 기록하였고, 국왕의 판결에는 정조가 심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재조사를 명령하거나 심리를 완료하여 형량을 선고하는 내용을 담았다.

편찬/발간 경위

이 책은 영·정조 연 간 조선 왕조의 행정 체계가 재정리되는 시기에 고문의 금지 등이 이루어지고, 형사 사건 처리도 재정비되던 시대적 분위기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좌승지홍인호와 동생인 홍의호가 중심이 되어 편찬하였다.

홍인호는 자신이 맡은 직책상 각종 죄인의 심리와 처리에 대한 기록을 계속 엮어 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1798년(정조 22) 5월, 내용을 보다 체계적이고 자세하게 보완해 간행하고, 형조·한성부·4도 8도(四都八道)에 반포함으로써 형옥(刑獄)의 처리에 참고하자고 건의하였다. 이어 7월 좌의정이병모(李秉謨)가 그에 대한 찬성의 의견을 밝힘으로써 정조의 최종 결재를 받았다. 이리하여 이 책의 대강이 이루어졌으며, 1799년(정조 23) 그 내용을 교정하자는 홍의호의 건의에 대해 해당 낭관(郎官) 및 율관(律官)의 도움을 받아 시행하라는 명령이 내려짐으로써 완성된 것으로 보인다.

1801년(순조 1)에 정조 대에 편찬된 서적들을 정리할 때 간행하자는 논의도 있었으나 결국 활자로 간행한다는 편찬 초기의 계획은 이루어지지 않고, 여러 부의 필사본이 이루어졌을 뿐이다.

이 책은 책의 성격상 정제된 체제에 따라 일목요연하게 기록된 판례집으로서, 일차적으로 전통시대의 형사 사건의 내용과 그에 대한 처리 과정, 그리고 공정한 옥사 처리를 위해 쏟았던 관심이 어떠했는가를 잘 보여주는 자료이다. 또한 18세기 말 각종 범죄에 반영된 서울과 지방의 사회상의 일단을 생생히 전하고 있어, 당시의 사회사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한편, 사건에 따라 경제적 배경이 중요한 요인이 된 경우도 많아서, 조선 후기의 경제적 상황을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

서지 사항

32권 16책으로 구성되어 있고, 필사본이다. 크기는 34×22cm이며, 규장각, 장서각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이 책은 영조·정조 대 행정과 문화의 재정비 속에 심리 절차를 개선한 『증수무원록』이나, 심문 방식을 새로 규정한 『흠휼전칙(欽恤典則)』이 편찬· 시행되던 맥락에서 형사사건의 공정한 판결을 위한 자료집으로 정리되었다. 정조가 대리 청정하던 때인 1775(영조 51)~1799년(정조 23)의 담당관서인 형조에 쌓인 중요 사건의 판례들을 규장각 초계문신(抄啓文臣)이었던 홍인호·김희조(金熙朝)가 정리하여, 1799년에 일단락하였다.

처음에는 활자본으로 간행하여 심리를 맡은 전국 관서에 반포하려는 계획이었으나, 정조의 죽음으로 인한 정치적 격변 속에서 여러 부의 필사본이 이루어지는 데 그쳤다. 최종 판결을 내린 정조의 문집 『홍재전서(弘齋全書)』에도 실려 있다.

이 책에서는 같은 사건들을 연도별과 지역별, 두 방식으로 수록하였다. 연도별로 배열한 것은, 먼저 검시 등 범죄 결과의 확인으로부터 혐의자 심문과 정부 및 국왕에의 보고를 거쳐, 판결문 작성에 이르는 심리의 절차와 형식을 정리해 두었다. 각 권에는 범인의 이름을 딴 사건별 목록을 싣고, 한 해 단위로 사건을 싣되, 같은 해는 지역별로 분류하였다. 개별 사건별로 사건의 정황과 경과, 치사(致死) 등 범죄 결과에 대한 직접 원인, 옥사가 성립된 일시 및 과정을 포함한 사건의 개요를 먼저 밝히고, 그 뒤에 각 관서의 처리, 중앙 정부에 대한 보고, 형조 등 담당관서의 판단 등에 대한 기록을 실었으며 마지막에 국왕의 최종 판결 지방, 담당관서와 국왕 사이에 보고와 판결이 여러 차례 행하여지기도 하고, 때로는 신하들의 의견을 널리 구하는 절차를 밟기도 하였다. 모두 1,850여 건의 기록이 수록되었는데, 대부분 살인 또는 치사사건이며, 임금의 도장을 위조하거나 지방 관아의 국왕 상징물인 전패(殿牌)를 훼손한 사건 등이 포함되었다.

지역별로 정리한 것은 권별로 목록을 정리해 놓은 후 사건별 심리 기록을 수록하였다. 최종 판결의 내용은 연도별로 수록한 것과 같지만, 사건의 정황이나 각 관서의 조치는 매우 축약해 놓았다. 실무에 참고하기 위한 것이어서 목록이 자세하고, 기재 방식도 이해에 편하도록 되어 있다. 이 밖에 같은 이름의 책으로서 1809년(순조 9)의 범죄인들에 대한 일괄 심문 기록도 있다.

본문은 각 사건별로 범죄 행위의 주체가 객체에게 행한 행위, 그리고 그 행위의 결과와 그에 대한 원인을 밝힌 제목을 붙이고, 처리 과정에 대해 간단히 기술하였다. 그런 다음 판부(判付)라는 표제 밑에 임금의 지시를 적었는데, 판부의 내용은 위 책의 ‘판’과 동일하지만, 사건의 정황이나 각 관서의 조처는 극도로 축약되어 있다.

1·2책에 서울, 3·4책에 경기, 5·6책에 관동, 7·8책에 관서, 9·10책에 호남, 11·12책에 호서, 13·14책에 영남, 15·16책에 해서, 17·18책에 관북의 사건을 실었다.

의의와 평가

이 책은 정조 재위 기간 중의 판부나 전교, 유지(有旨) 등은 심리 제도의 확립과 판결의 공정성을 입증하는 어제(御製) 바로 그 자체이다. 이후 『심리록』은 여러 법학자들에 의해, 『대전통편(大典通編)』, 『추관지(秋官志)』와 함께 조선시대 관찬 법제사 3대 업적 중 하나로 불리고 있다.

참고문헌

  • 김현진, 「『審理錄』을 통해 본 18세기 여성의 자살실태와 그 사회적 含意」, 『조선시대사학보』 제52호, 조선시대사학회, 2010.
  • 심재우, 「『審理錄』을 통해 본 18세기 후반 서울의 범죄 양상」, 『서울학연구』 제17호, 서울시립대학교 서울학연구소, 2001.
  • 유승희, 「「日省錄」 刑獄類에 나타난 死罪 기록의 고찰」, 『서지학연구』 제38집, 한국서지학회, 2007.
  • 정일영(2008), 「조선 후기 성별에 따른 자살의 해석-正祖代 《審理錄》의 자살 관련 사건을 중심으로-」, 『의사학』 제17권 제2호 통권 제33호, 대한의사학회, 2008.
  • 정순옥, 「정조의 법의식-『審理錄』 판부를 중심으로-」, 『역사학연구』 제21집, 호남사학회,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