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천군(信川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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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도 서북부 구월산 남동쪽에 있으며 동쪽으로 재령, 남쪽으로 해주, 서쪽으로 송화, 북쪽으로 은율·안악과 접하는 곳에 설치되어 주민들을 관할하던 관청이자 행정구역.

개설

신천군(信川郡)은 구월산 남쪽에 있던 읍이다. 1413년(태종 13)에 현이 설치되고 1469년(예종 1)에 군으로 승격된 후 조선말까지 읍격이나 강역의 변화 없이 유지되었다.

설립 경위 및 목적

삼국시대에는 고구려의 승산(升山)이었다. 궁홀(弓忽), 궁올(弓兀)이라 불리기도 했다. 신라의 삼국통일 후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중반군(重盤郡)이 설치되었다. 고려 건국 후 신주(信州)가 되었다. 995년(고려 성종 14)에 방어진이 되어 방어사가 설치되었으며, 1012년(고려 현종 3)에 방어사를 폐지하고 황주의 속현이 되었다. 1106년(고려 예종 1)에 신천으로 독립하였고, 감무가 부임하였다. 조선 건국 후 1413년에 현감이 부임하였고, 1469년에 이곳 출신 명나라 환관 정동(鄭同)의 요청으로 신천군으로 승격하였다(『예종실록』 1년 4월 1일).

조직 및 역할

군수는 음관 4품직이었다. 좌수 1명, 별감 2명, 군관 2명, 아전 5명, 지인 20명, 사령 18명, 관노 4명, 관비 5명이 있었다. 조선후기에는 시위군 22명, 영진군(營鎭軍) 110명, 선군 289명이 있었다.

변천

1895년(고종 32)에 23부제 시행으로 해주부 신천군이 되었다. 이듬해에 전국을 13도로 개편하면서 1896년(고종 33)에 황해도 신천군이 되었다. 1914년에 인근의 문화군과 합속되어 규모가 확대되었다.

참고문헌

  • 『경국대전(經國大典)』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황해도(黃海道) 신천군(信川郡)
  • 『여지도서(輿地圖書)』황해도(黃海道) 신천(信川)
  •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