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헌력후편법(時憲曆後編法)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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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시헌력후편법 |
한글표제 | 시헌력후편법 |
한자표제 | 時憲曆後編法 |
상위어 | 역법(曆法) |
동의어 | 갈법(喝法, [카시니법]), 시헌력(時憲曆), 신법서양역서(新法西洋曆書) |
관련어 | 갑자원력(甲子元曆), 대진현(戴進賢), 매각성(梅殼成), 매법(梅法), 숭정역서(崇禎曆書), 역상고성(曆象考成), 역상고성상하편(曆象考成上下篇), 역상고성후편(曆象考成後篇), 탕법(湯法), 태양력(太陽曆), 태음력(太陰曆), 하국종(河國宗) |
분야 | 문화/과학/천문 |
유형 | 개념용어 |
지역 | 대한민국 |
시대 | 조선 |
왕대 | 조선 |
집필자 | 정성희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시헌력후편법(時憲曆後編法)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정조실록』 15년 10월 11일 |
태음력(太陰曆)에 태양력(太陽曆)의 원리를 적용하여 24절기의 시각과 하루의 시각을 정밀하게 계산한 역법.
개설
시헌력후편법(時憲曆後篇法) 청나라에서 시행한 시헌력(時憲曆) 중에서 1742년(영조 18)에 쾨글러(Kögler, I., [戴進賢])와 페레이라(Pereira, A., [徐懋德])에 의하여 편찬된 『역상고성후편(曆象考成後篇)』에 따라 추보하여 시행한 역법으로 청나라와 조선 등에서 사용되었다. 시헌력은 1645년부터 청나라에서 시행하여 도중에 두 번의 개편을 거쳤는데, 두 번째 개편된 시헌력법을 가리키며, 우리나라에서는 조선 영조대부터 사용되었다(『정조실록』 15년 10월 11일).
내용 및 특징
시헌력은 원래 청나라 역법인데, 1653년(효종 4)에 조선에도 도입하여 조선말까지 사용되었다. 시헌력은 1644년 청나라의 세조(世祖)가 중국을 통일하자 명나라 말에 『숭정역서(崇禎曆書)』 137권의 편찬에 참여하였던 아담 샬(Johann Adam Schall von Bell, [湯若望])에게 이를 정리, 개편할 것을 명하여 『신법서양역서(新法西洋曆書)』 103권을 편찬케 하여 그다음 해부터 시행한 역법이다.
시헌력은 전체 체제는 중국의 전통을 따랐으나 코페르니쿠스 체계가 아닌 튀코 브라헤의 우주체계를 채택하였고, 천체의 운동은 본륜(本輪)과 균륜(均輪)으로 그 지속을 설명하였으며, 지구의 개념을 도입하여 달의 지반경차(地半徑差)라는 시차(視差)를 썼고, 대기차(大氣差)를 도입하였으며, 계산에서 평면 및 구면(球面) 삼각법(三角法)을 사용하였고, 근일점(近日點)의 이동을 밝혔으며, 24절기에는 종래의 항기법(恒氣法)을 버리고 정기법(定氣法)을 도입하였다. 그러나 한편 가톨릭 우주관에 근거하여 지구의 자전을 부인하고 모든 항성이 항성천(恒星天)에 붙어서 같은 거리에 있다고 하였다.
『숭정역서』는 역원을 1628년(명 숭정 1)으로 하는 속칭 탕법(湯法)은 정돈이 덜 되어 복잡하고 이해가 어렵다고 하여 1684년(청 강희 23)에는 매각성(梅殼成) 등에 명하여 이를 대폭 정리, 개편하여 『역상고성(曆象考成)』 상·하편 26권과 『표(表)』 16권을 편찬케 하여 1726년부터 바꾸어 썼다. 『역상고성』 상·하편부터는 갑자년인 1684년을 역원으로 사용하였다. 이를 갑자원력(甲子元曆) 또는 매법(梅法)이라고 하였다. 탕법이나 매법이나 관측치는 모두 튀코 브라헤의 값을 썼다. 매법에 의한 계산에 착오가 생기자, 1742년에 다시 서양 신부 대진현(戴進賢) 등에 명하여 『역상고성후편』 10권을 편찬하게 하였는데, 이것이 시헌력후편법이다.
청나라에서는 1645년(청 순치 2)부터 아담 샬이 편찬한 『신법서양역서』에 따라 시헌력을 시행하였는데 1722년부터는 매각성과 하국종(河國宗)에 의한 『역상고성』상·하편에 따라 추보하여 시행되었다. 전자를 탕법, 후자를 매법이라고 한다. 이 매법에 의한 1730년 6월 초하루의 일식예보(日食豫報)의 착오로 인하여 다시 『역상고성후편법』, 즉 갈법(喝法, [카시니법])이 편찬되고 시행된 것이다. 이 갈법은 탕법이나 매법이 천문상수로서 브라헤의 관측치를 사용한 데 비해 카시니의 관측치를 사용하였다. 또 비록 지동설(地動說)은 도입하지 않았으나 태양과 달의 운동 계산에서는 케플러(Kepler, J., [刻白爾))의 행성 운동의 법칙을 사용한 것이 그 획기적인 특징이었다. 『역상고성후편』은 역관(譯官) 안명열(安命說)·김정호(金挺豪)·이기흥(李箕興) 등이 사서 조선에 들여왔고, 또 황력재자관(皇曆賷咨官) 김태서(金兌瑞)도 이 후편 1질을 사 왔다. 그리하여 같은 해에 새로 편찬된 갈법으로 역법을 고쳐 쓰기로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때는 태양의 위치[日躔]와 달의 위치[月離], 일식·월식만 갈법을 따르고, 오성(五星)의 위치 계산은 매법을 그대로 썼다고 한다.
이 『역상고성후편』은 연원을 1723년(청 옹정 1) 계묘로 하였으므로 계묘원력(癸卯元曆) 또는 대법(戴法)이라고 부른다. 대법에서는 관측치를 모두 새롭게 하여 주로 프랑스의 천문학자 카시니의 값을 도입하고, 태양과 달의 운동의 계산에는 케플러의 행성법칙(行星法則)에 따라 타원궤도와 면적속도법칙(面積速度法則)을 도입하였다.
변천
시헌력후편법인 카시니법을 해설한 책으로는 1798년(정조 22)에 관상감 제조 서호수(徐浩修) 등이 편찬한 『칠정보법(七政步法)』, 남병철(南秉哲)이 1862년(철종 13)에 편찬한 『추보속해(推步續解)』, 남병길(南秉吉)이 편찬한 『시헌기요(時憲紀要)』 등이 있다.
시헌력후편법을 바탕에 둔 음력은 1896년에 서양 역인 태양력으로 바뀌었다. 조선은 개항을 기점으로 일본을 비롯한 서구열강들과 연달아 조약을 체결해야 했고, 이러한 상황에서 서양과 날짜가 다른 음력을 계속 사용하기란 어려웠기 때문이다. 더욱이 청일전쟁에서 청이 패하고 일본의 입김이 작용한 갑오경장이 추진되면서 조선은 본격적으로 중국 중심의 시간 질서에서 서양 중심의 시간 질서로 재편되었다.
참고문헌
- 『칠정산내편(七政算內篇)』
- 『역상고성(曆象考成』
- 『국조역상고(國朝曆象考)』
-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 나일성, 『한국천문학사』, 서울대학교출판부, 2000.
- 수내청 편, 유경로 편역, 『중국의 천문학』, 전파과학사, 1985.
- 陳遵嬀, 『中國天文學史』16책, 明文書局, 19841990.
- 能田忠亮, 「漢代論天攷」, 『東洋天文學論叢』, 恒星社, 1943.
- 藪內淸, 『中國の天文曆法』, 平凡社, 1969.
- Needham, Joseph., Science and civilisation in China,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62.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