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한축기의(時旱祝祈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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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날이 가물 때 비가 내리기를 기원하며 악(嶽)·해(海)·독(瀆) 등에 제사하던 의례.

개설

조선시대의 국가 제사는 일정한 주기마다 지내는 정기제와, 신에게 기원하거나 아뢸 일이 있을 때 지내는 기고제(祈告祭)로 구분된다. 시한축기의는 날이 가물 때 비가 내리기를 빌던 기우제였으므로 기고제에 해당한다. 제관(祭官)을 대표해 신에게 잔을 올리는 헌관(獻官)은 3품관 중에서 임명하였는데, 헌관은 구름을 일으키고 비를 내리는 능력을 지닌 큰 산[嶽]과 바다[海]와 큰 강[瀆]의 소재지에 설치한 제단에 나아가 제사를 지냈다. 이 제사를 지낸 뒤 비가 온 경우, 입추가 지난 다음 감사의 의미로 보사(報祀)를 지냈다.

연원 및 변천

‘시한축기의’라는 의례명은 조선시대의 국가 전례(典禮)를 기록한 문헌 중 『세종실록』 「오례」에만 등장한다. 제사의 대상이나 성격으로 보아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에 실린 ‘시한취기악해독급제산천의(時旱就祈嶽海瀆及諸山川儀)’와 같은 의례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절차 및 내용

의식은 의례를 거행하기 전의 준비 과정과, 제사 당일의 의례 절차로 구성된다. 준비 과정은 재계(齋戒)와 진설(陳設) 등이고, 당일의 의례는 재배(再拜), 전폐(奠幣), 작헌례(酌獻禮), 철변두(徹籩豆), 망예(望瘞)의 순서로 진행된다. 보사를 지낼 때는 철변두를 행하기 전에, 제사를 지낸 술과 고기를 받아서 먹고 마시는 음복수조(飮福受胙)를 행한다.

재계는 예조(禮曹)의 요청에 따라 총 3일간 행하는데, 2일 동안은 산재(散齋)라 하여 평소처럼 일하면서 음식과 행동을 삼가고, 하루는 치재(致齋)라 하여 오직 제사와 관련된 일만 행한다(『세종실록』 오례 길례 의식 시한 축기의). 가뭄이 심하여 제사를 서둘러 지내야 하는 경우에는 하루 동안 근신하며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하는 청재(淸齋)만 행하여도 무방하다. 진설은 제사 전날, 일을 맡은 유사(有司)가 제단을 청소하고, 제사에 사용할 각종 집기와 제사에 참석하는 모든 구성원의 자리 및 의례를 행할 자리를 정하는 것을 말한다. 여기에는 제삿날 축시(丑時) 5각(刻) 전에 신위를 놓아두는 신좌(神座)를 설치하는 것까지 포함된다. 1각은 15분이다.

제사 준비가 끝나면 제사에 참여하는 모든 구성원과 헌관은 축시 1각 전에 각자 정해진 자리로 나아간다. 헌관이 2번 절하면 참석자 모두 자신의 자리에서 2번 절하며 신을 맞이하는데, 이를 재배라 한다.

전폐는 헌관이 세 번 향을 올린 뒤 미리 준비한 폐백을 신위 앞에 놓는 일을 말한다. 폐백으로는 자의 일종인 조례기척(造禮器尺)을 기준으로 1장(丈) 8척(尺) 길이의 저포(苧布)를 올리는데, 큰 산과 바다에는 각 방위에 해당하는 색의 저포를, 큰 강에는 방위와 상관없이 검은색 저포를 사용한다(『세종실록』 오례 길례 서례 폐백). 작헌은 신에게 술잔을 올리는 일로, 잔을 올린 뒤에는 축문을 읽어 기원의 말을 아뢴다.

철변두는 모신 신을 다시 돌려보내는 송신(送神)의 절차이다. 원래는 제기인 ‘변(籩)’과 ‘두(豆)’를 거둔다는 의미이지만, 실제 의례에서는 변과 두를 조금씩 움직여 놓는다. 그 뒤 헌관이 4번 절하여 송신의 절차를 마치면, 큰 산의 경우 제사에 사용한 축판과 폐백을 미리 준비한 구덩이에 묻는데 이를 망예라 한다. 구덩이의 흙을 반쯤 덮으면 헌관이 먼저 나가고, 이후 다른 참석자들도 4번 절하고 나간다. 큰 강과 바다의 경우에는 축판과 폐백을 묻지 않고 물에 담근다.

참고문헌

  • 『국조오례의서례(國朝五禮儀序例)』
  •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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